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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사모광장

대중문화에 대한 단상

대중문화에 대한 단상

 

 

직업은 새시공장 노동자, 학력은 고졸인 고등학교 친구와 십 수 년 만에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면서 한 얘기이다. 그는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의 노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여느 노동자의 삶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그의 삶이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월급의 상당량을 투자해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냥 배우고 싶어서”, “뭔가 좋아 보여서”, “내가 못 배운 게 한이 되기도 하고”가 그의 대답이었다. 친구는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서 모차르트를 치고 싶어 했다. 그는 연극이나 음악회는 가본 일이 없고 대전예술의전당이나 시립미술관도 어디 있는지 들어만 봤다고 했다.


이 노동자가 보여주는 문화적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열악한 노동조건과 일상생활, 노래방에서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를 한번 불러 젖힘으로써 버거운 삶의 고통을 잊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로 구성되는 그의 생활세계와 모차르트의 경쾌하고 부드러운 선율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것인가? 만일 그가 희망대로 모차르트를 친다고 해서 그의 삶이 TV콘텐츠와 할리우드 영화에 넋이 나가고 노래방에서 최신 댄스곡을 불러대는 것이 유일한 문화생활인 동료들의 삶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윤택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본문의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를 서두에서 길게 언급한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내 주변의 친구들과 지내면서 느낀 ‘문화적 엄숙주의’와 내가 가지고 있는대중문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내가 교류했던 친구들의 ‘고급문화’ (본래 나는 고급문화라는 단어의 사용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중심의 문화적 엄숙주의가 나의 대중문화 편력과는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몇몇 사람들로부터 들은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무식하다’ 라는 말이었다. 단지 내가 TV를 많이 본다거나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교양 없는 사람으로 몰리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앞에서 언급한 피아노 배우는 노동자 친구를 생각하곤 했다. 내가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그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나 역시 그들의 문화적 삶의 형식이 나의 것과 ‘달랐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이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숨죽이고 명연주를 감상하고 있을 때, 나는 매일 매일 끊임없이 제공되는 교양, 오락, 드라마, 뉴스의 보고인 TV를 보며 울고 웃고 즐거워했다. 그들이 외국의 유명한 작곡가와 연주자의 이름을 외우고 있을 때, 아마도 나는 어렵게 구한 외국 팝송잡지를 영어사전을 찾아가면서 열심히 해석해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름’이 그들이 받은 감동과 내가 받은 감동간의 ‘우열’을 가리지는 않는다. 문화적 소비로부터 얻은 감동에 서열을 매길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에 좋은 것과 나쁜 것, 미적인 것과 경박한 것이 있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너무도 당연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중문화를 문화적 ‘진정성(authenticity)’ 이 없으며 속물적인 상업적 욕구만이 생산의 기본 동기인 저급한 문화형식으로서 매도하는 인식 역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다름 아니다. 대중문화의 주요한 소비계층인 일반 대중들의 이러한 인식은 그들이 처한 문화적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매스미디어라는 새로운 문화전파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발전이 낳은 대중사회의 등장은 문화향유의 권리가 더 이상 배타적으로 문화엘리트들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문제의 핵심은 시대착오적인 고급/대중문화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개인의 문화적 생산과 소비의 자율성과 그것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서 존중하는 시발점이 된다. 왜냐하면 문화는 개인의 삶의 경험과 관심, 그가 처한 사회적 조건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이해할 때에만 우리는 서두에서 언급한 노동자의 모순적인 문화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틀 속에서만 비로소 우리는 왜 우리의 10대들이 그리도 ‘아이돌’에게 열광하는지, 왜 록과 랩뮤직이 증오의 신념이기보다는 진보와 사랑의 신념인지, 그리고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TV콘텐츠들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사회문화적 자산인지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사회 대중문화의 대표적 매체로 자리매김해온 텔레비전을 바람직한 문명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선 TV라는 대중매체를 하나의 중요한 사회제도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전MBC가 지역민들에게 선을 보인 지 반세기가 넘었다. 그동안 지역문화의 창달을 위해 보여주신 헌신과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지금까지의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더욱 더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생산하여 지역민의 문화적 욕구와 기대를 충족시키고 삶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미래의 핵심역량을 견인하는데 앞장서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