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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가수 박상철의 조건 없는 노래 인생

 

 

사람과의 관계나 약속에서 조건을 다는 순간 순수성은 희석된다. 그래서 ‘무조건’이라는 말은 최상의 수식어이자 최고의 배려이고 속 깊은 의리를 상징한다. 가수 박상철은 그의 노래 무조건처럼 조건 없이 팬들에게 다가선다. 그게 바로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꿈이 있는 한 기회는 온다!” 일용잡부, 노숙자, 미용사, 재연배우, 방송리포터를 거치며 가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가수의 꿈을 이룬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 인생’을 들어봤다.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 달려갈게” -대전MBC와의 소중한 인연
가을은 트로트 가수들에게 연중 최고 대목이다. 팬들의 박수와 함성으로 힘을 얻는 직업 인지라 전국 방방곡곡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가수 박상철. 덕분에 벌써 일주일째 집에도 가지 못하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팬들을 만나고 있단다. 그런 그가 바쁜 와중에도 대전MBC <허참의 토크&조이>를 찾아무려 3시간의 녹화시간 동안 방청객들을 울리고 웃기며 지나온 인생역정을 풀어냈다. 녹화가 끝난 후, 대전MBC와의 인연을 물어보니 이해가 갈만했다. “MBC <가요베스트>라는 프로그램으로 대전MBC와 인연을 맺었어요. 10년이 넘었죠. 지금은 포맷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성인가요 중에 유일하게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때 제가 1위를 여러 번 했죠.(웃음) 특히 대전MBC 김종찬 국장님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요. 무명시절부터 저를 좋게보고 많이 도와주셨거든요.”지금은 섭외 1순위의 트로트 가수지만 그때의 의리를 생각해 대전MBC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온다는 박상철. 그는 신의와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의리남’이다.

 

 

희망을 전하고 싶은 싱어송라이터
박상철은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직접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다. 지금까지 작사 작곡한 곡만 해도 300여곡, 그가 만든 노래에는 제각각의 사연이 담겨있다. “덜컹덜컹 달려간다 시골 버스야 / 힘차게 달려간다 / 빵빵빵빵 기적을 울리며 / 신나게 달려간다” 그가 직접 노랫말을쓴 <빵빵>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왜 마을버스가 내는 소리를 경적이 아닌 기적이라고 표현했을까?
“가난한 시골사람들이지만 모두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싶었어요. 모두가 기적 같은 희망을 꿈꾸고 사는데 노래를 통해서라도 그 기적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그 역시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노랫말 하나에도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가난과 실패를 딛고
그가 나고 자란 곳은 강원도 두메산골. 방과방 사이에 구멍을 뚫어 호롱불 하나로 양쪽방을 밝힐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겪었다. 라디오는 물론 TV는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가수는 그의 변치 않는 꿈이었다.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학력고사 끝나기 무섭게 짐을 싸들고 서울로 상경했다.“서울에 가서 누군가의 눈에 들면 무조건 가수되는 줄 알았어요. 작곡가를 찾아갔는데,사투리에 얼굴은 새까맣지,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음반을 내준다는 기획사 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결국 돈만 날렸죠. 그때 상처도 많이 받았고 사회에 대한실망도 컸어요.” 돈도 날리고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그는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절 같이 생활하던 노숙자들에게 오히려 위안과 인생의 교훈을 얻은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가수의 꿈을 향해 좀 더 본격적인 노력을기울였다. 1993년, 운명의 그날이 왔다. KBS <전국노래자랑> 삼척 편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가수라는 꿈에 한발 다가간 것이다. 이후 방송국 문턱이 닳을 정도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우여곡절 끝에 <자옥아>가 히트를 하면서 점점 이름을 알려나갔다.

 

 


세월은 흘러 어느새 그에게는 ‘트로트계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온갖 역경을 이겨낸 박상철. 무조건 노래를 불러야 사는 사람, 팬들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는 사람. 그에게 노래는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