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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중요한 협상을 할 때 나오는 말 가운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이 있습니다. 양측이 원칙적으로 큰 틀에서 합의를 했더라도 세부 사항까지 합의를 보지 못하면 전체 합의가 어그러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부분에 숨어있는 ‘악마’를 다 잡아내야 일이 성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지요. 실제, 국가 간의 협상에서도 그렇고 기업 간의 협상에서도 그렇고 세부 사항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해 협상이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 옥스포드 사전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의 의미를 ‘세부 사항이 가장 난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악마’라는 단어를 활용해서 이야기 하자면, 미세한 부분에 숨어있는 ‘악마들’을 다 잡아내야 일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지난 달 27일부터 이달 2일까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던 것도 ‘디테일’이었습니다.ABU(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Asia Pacific Broadcasting Union) 총회는 매해 10월 정회원사가 돌아가면서 주관하는데, 올해는 터키의 국영방송인 TRT 차례였습니다. 개막식에서부터 ‘ABU 송 페스티벌’, ABU상 시상식에 이르기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물 아래에서는 백조의 다리가 정신없이 흔들렸을지 몰라도 물 위에서는 그저 아름다운 백조가 유영하는 것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참석자들이 흡족한 상태에서 회의를 마쳤고 TRT는 수십 개 나라에서 온 수 백 명의 회원들에게 ‘유능한 방송사’로 기억되게 됐습니다.


총회 이외에도 뉴스 품질 개선 워크샵과 WWW(Women With Wave) 등 여러 부대행사도 함께 열렸는데, 지난해 마카오 행사 때보다 훨씬 더 참석률도 높았고 연사들도 훌륭했습니다. 그만큼 담당자들이 발품을 많이 팔았다는 것이지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최소한 두 명 참석했고 시각장애인도 한 명 참석했는데, 시각장애인 여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ABU 관계자가 동행하면서 안내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생각이 오갔던 곳은 ABU상 시상식장에서였습니다. 올해 ABU 상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회원사는 물론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유럽나라까지 참가해서 모두 250여 편이 출품되었고 결선작으로는 50여 편이 선정되었습니다. MBC 본사의 <마이리틀텔레비전>이 예능 부문 최우수상을 거머쥐어 MBC 브랜드를 빛냈습니다. 최종 수상작으로는 단 12편만이 선정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각 부문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네팔이나 피지, 홍콩의 지역방송사들이 출품한 작품들이 결선에 오르거나 수상하는 것을 보면서 대전MBC의 영역이 확장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만 좋으면 전국방송이든 지역방송이든 세계 시청자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역방송들은 ‘디테일’을 보는 데는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앙에서는 보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들을 지역에서는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프로그램에 얼마나 많은 땀을 쏟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소재는 인류에 보편적인 소재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한 컷 한 컷 좋은 영상을 만들고 좋은 글을 덧입히면 대전MBC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터키, 이란, 독일에서도 방송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산 자동차, 한국산 텔레비전은 전 세계에서 이미 최고급 상품으로 팔려나갑니다. 한국의 드라마도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존재를 각인시켰고 한류와 함께 아이돌 스타들은 최고의 몸값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ABU 총회 송 페스티벌에서도 씨엔블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대접을 팬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전국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디테일’에 있습니다. ‘디테일’이 작품의 수준, 질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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