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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일류와 삼류

 

일류와 삼류

손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지인이 소개해준 식당에 갔습니다. 대전이라면 그동안 봐둔 식당 가운데서 고르면 되었지만 인근 도시였기 때문에 아는 식당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가보았던 한정식 식당이었고 단독 방에서 조용히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어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예약이라 단독 방은 모두 예약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괜찮다면 8인용 별실에 칸막이를 해 자리를 해주겠다는 답을 얻고 식당에 갔습니다. 다른 팀과 동석을 할 수 있는 부담이 있지만 칸막이를 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2시가 좀 넘은 시각, 식당은 와글와글 붐볐습니다. 8인실 방을 기대했던 우리는 홀(hall)로 안내 받았습니다. 구석자리라고 하지만 마루가 트여 있어 모두가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개된 자리였습니다. 물론 칸막이도 없었지요. 이미 식당에 들어섰고 손님을 모시고 다른 식당을 찾기에는 무리인 시간,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식당은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고 음식 나르는 종업원과 “이모, 여기 김치 더 주세요”, “여기 식사 왜 안 갖다 주세요?” 등 손님들의 주문 소리가 뒤엉겨 불협화음의 ‘교향곡’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옆 자리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마 일찌감치 점심을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종업원이 빈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맞부딪히는 그릇이 떨그럭거리는 소리와 쫘르륵 수저 쓸어내는 소리가 엮여서 내는 소음은 귀를 아프게 할 정도였습니다. 옆 자리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것이 전혀 안중에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대중식당의 특징은 손님들이 일시에 들어와서 일시에 빠져나간다는 것이지요. 이 식당 역시 12시 30분쯤이 되자 썰물 빠지듯 손님들이 빠져나갔습니다. 공무원이 주 고객인 이 식당의 점심 영업의 절정은 12시에서 12시 30분인 듯 했습니다. 홀에 남은 손님은 우리 테이블과 옆 테이블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왁자지껄하던 식당이 일순 조용해지더니 옆 테이블의 대화가 귀에 다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인근에 카페라도 있으면 자리를 옮기련만 독립된 곳에 마련된 식당이라 마땅히 옮길 장소도 없어 대화를 계속했습니다. 양 테이블의 일행 모두가 서로 민망한 상황이었습니다.


가끔씩 일류 식당에서 식사를 해보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식탁과 식탁간의 거리는 상대방의 대화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굳이 단독 방이 아니라도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식사를 마친 테이블 정리를 할 때도 다릅니다. 종업원들은 떨그럭거리는 소리를 최소화하면서 옆 식탁에서 식사하는 손님을 방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손님들도 “여기요”라고 종업원을 부르는 대신 손을 흔들면 종업원이 얼른 달려와서 주문을 받습니다. 종업원들은 식당 입구나 모서리에 서 있으면서 어디서 손님들이 자신들을 찾을까 살핍니다. 만약 손님들이 몇 명 되지 않아 서로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판단되면 음악 볼륨을 조절해서 서로의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합니다.


일류와 삼류의 차이가 이렇습니다. 가격 차이가 반드시 일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 값이 비싼 곳도 있지만 값은 저렴하지만 서비스는 일류인 식당도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그 ‘삼류’ 식당의 경우 음식 값이 싼 곳이 아니었습니다. 외양만 보면 그 식당도 일류라고 생각할 정도의 번듯한 건물에 번듯한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류와 삼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스템’과 교육’입니다. 앞서 언급한 그 식당의 경우 식탁간의 거리를 조금만 더 떨어지게 한다면 옆 테이블의 대화가 고스란히 들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받을 손님의 수가 줄어들게 되니 수익은 좀 줄어들 수 있겠지요. 수익을 양보할 수 없다면 음악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종업원에게 필수적으로 시켜야하는 교육은 빈 그릇을 치울 때 나는 소음을 최소화하라는 것입니다.


식당 하나만 봐도 일류와 삼류는 금방 차이가 납니다. 방송도 마찬가지겠지요. 대충 만드는 작품과 치밀하게 연구해서 정성을 들이는 작품은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30년 방송 일을 하면서 터득한 것은 ‘작품은 정성을 기울인 만큼 나온다’는 겁니다. 같은 체크무늬 남방도 일류 디자이너는 체크무늬를 다 맞추어서 재단을 하는 반면 ‘싸구려’ 제품들은 아무렇게나 재단을 합니다. 일류는 멀리서 봐도 무늬가 조화를 이루는 반면 싸구려는 부조화를 이루면서 보는 것이 불편하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두 제품의 가격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집니다. 하나는 일류, 하나는 삼류니까요.


고객으로서 사람들은 일류를 선호합니다. 일류 식당에 가서 일류 서비스를 받고 싶고 출장 갈 때는 일류 항공사의 좌석에 앉아 편안히 여행하고 일류 호텔에서 묵고 싶어 합니다. 의상도 형편이 허락하는 한 일류 옷을 사 입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내가 만드는 제품들은 일류일까, 내가 만드는 제품을 일류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나, 내 후배들은 일류로 키워내는가, 이런 고민을 해 봅니다. 겉모양은 비슷해도 고객들은 일류인지 삼류인지 다 알기 때문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