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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공부하는 나라

공부하는 나라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을 하면서 미국에 대해 느낀 점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공부하는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존재하는 수도여서 더 그렇기도 했겠지만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단어가 여러 개 있겠지만 ‘씽크탱크’도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기관입니다. ‘씽크탱크(Think Tank)’는 말 그대로 생각을 저장해 둔 ‘생각저장고’입니다. 온갖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그 연구 결과를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씽크탱크가 있습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헤리티지재단이나 브루킹스, 카네기, 케이토, AEI, CSIS 같은 씽크탱크들은 연중 내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세미나와 콘퍼런스 등을 열며 현안을 토론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각종 토론회가 전문가들만의 자리가 아니라 항상 일반 시민들이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전문가들이 60-70 퍼센트 정도 된다면 30-40 퍼센트는 일반 시민들이 관심 주제에 따라 참여해서 의견도 표명하고 질문도 한다는 거지요. 귀국한 지 1년 반이 넘은 지금까지도 헤리티지나 카네기 재단에서는 세미나를 알리는 이메일을 보내줍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10월 13일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지도력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알려왔고 카네기 재단은 10월 14일에는 한일 간의 50년 관계와 미래에 대해, 15일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씽크탱크들의 세미나장은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소통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책 대안이 형성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미국에게 중요한 중동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은 전문가들끼리 의견을 교환하고 참석한 정책결정권자들은 이런 의견을 고려해서 정책 대안을 만들어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여론을 형성하는 삼각편대라면 씽크탱크와 언론, 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씽크탱크에서 각종 현안에 대해 세미나를 열고 신문, 방송에서 씽크탱크의 전문가를 초청해 그들의 의견을 널리 알리며, 의회에서는 자신들이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법안과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서는 훌륭한 세미나나 콘퍼런스가 많이 개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신문사나 방송사 등 언론사가 자사의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대형 콘퍼런스를 해마다 개최하는 것이 눈에 띄는데요, 사세를 지나치게 과시하는 수단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지식공유포럼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의 경우 전문 싱크탱크들에서 끊임없는 연구가 행해지고 크고 작은 세미나에서는 지식 공유가 이뤄지는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소규모 지식공유포럼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교육방송 등 일부 공영방송과 포털사이트에서 ‘인문학강의’ 등의 제목으로 지식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인데, 주제나 범위가 다소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장 큰 차이는 지식산업과 지식공간의 규모가 아닌가 합니다. 후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경우에는 토론이 제한되어 있거나 정부가 주도하고 국민이(강제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반면 선진국의 경우에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정리되고 소통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정책적으로 수렴된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더 많은 씽크탱크가 생겨나고 또 씽크탱크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차원은 좀 다르겠지만 대전MBC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지식공유 특강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특강, 박영숙 미래포럼 회장의 미래 특강, 서황욱 구글 상무의 유튜브 강의, 김진 논설위원의 논객 강의도 있었지요. 중국의 고전 ‘서경’에도 이런 말이 있다고 하네요. “스스로 스승을 얻는 자는 왕이 되고, 남이 나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자는 망한다.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가 있고 자기 개인의 사사로운 지혜에 따라 행하면 협소해진다.” 배움이 작게는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고 나아가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이겠지요.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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