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현존하는 최고의 스릴러 거장이자 천정부지 감독료가 뒤따르는 그가 2013년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연출한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범용드라마가 아닌 스크린 위주의 작품만 선보이는데다 세계 최정상의 디렉터 레벨을 유지하고 있는 그가 왜 미드 시나리오를 손에 움켜쥐었을까? 더 나아가 주연배우로 케빈 스페이시가 캐스팅됐다. 의구심 증폭의 방아쇠는 이 드라마 제작사가 기존 미국 지상파나 유수의 프로덕션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넷플릭스<Netflix>’다.
흥행보증 감독과 월드스타를 불러 1천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석권하며 세계적인 신드롬을 이뤄냈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기업이 만든 작품이 이런 상을 받은 전례도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도 휴가때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청하거나 SNS에 에피소드 평가를 올릴 만큼 슈퍼 콘텐츠가 되었다.
주목할 점은 ‘하우스 오브 카드’ 스토리의 진정한 주인공은 감독도 배우도 아닌 넷플릭스라는 것이다. 인터넷 기반 동영상 서비스기업인 넷플릭스는 1997년 ‘리드 헤이스팅스’가 세웠다. 처음에는 비디오와 DVD를 고객의 집까지 택배서비스를 통해 전달하는 영상대여 업체로 출범했다.
창립 10년째인 2007년. 넷플릭스는 영화대여업에서 인터넷 스트리밍 동영상서비스업으로 사업을 과감히 전환한다. 소위 OTT<Over-The-Top> 개척자가 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OTT는 기존의 케이블TV와 같은 셋탑박스를 장착하지 않고 인터넷 망으로 원하는 디바이스를 통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인터넷기반 동영상 서비스를 말한다. 또한 동영상의 전송방식도 일정 시간이 필요한 다운로드 형식이 아닌 즉시 재생 시스템인 스트리밍 형식이었다. 곧 넷플릭스로 갈아타는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미국 케이블방송 가입자들 사이에서 OTT의 스트리밍 시청을 위해 케이블 방송과 서비스 계약을 끊는 이른바 코드 커팅<Cord-Cutting> 현상이 본격화됐다. 넷플릭스는 마치 궁극의 권법을 연마한 무림고수가 전국의 무술도장을 격파하듯 미국내 케이블 방송사업자들을 파산으로 내몰았다. 유료방송 사업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넷플릭스의 놀라운 성과를 보자. 2014년 주식평가 결과 전년 대비 287%의 신장을 보였고 2015년 1분기 누적 가입자가 6,230만 명을 돌파해 세계 최대의 OTT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매출이 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믿기 어렵게도 미국 거대 지상파 CBS의 기업 가치를 추월했다.
작은 영상물 대여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가 미국의 대표적 지상파 CBS보다 높은 기업 가치를 획득할 정도로 성공한 요인은 두 가지로 축약된다. 첫째 ‘플렉스파일’이라 불리는 고객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가입자들의 영화취향과 시청패턴을 철저히 관리한 것이다.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가입자가 다음에 볼 가능성이 높은 영화와 드라마를 미리 소개해주는 이른바‘추천 알고리즘’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선풍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두 번째 요인은 ‘오지리널시리즈’ 제작 정책이다. 엄밀히 분류하면 영상물 유통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한 것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오렌지이즈더 뉴블랙’, ‘마르코폴로’와 같은 드라마를 직접 만들면서 제작과 유통마켓을 모두 소유해 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드라마 제작이 끝나자마자 10여 편에 이르는 시즌물을 모두 오픈해 가입자가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하는 ‘몰아보기‘<Binge Viewing>를 유도한다. 기존 실시간 지상파들이 대칭적으로 경쟁할 수 없는 구도를 만든 것이다. 몰아보기는 새로운 시청행태가 되었다. 이제 세계는 OTT 영토를 개척하고 신화를 이끌어낸 넷플릭스를 새로운 방송 산업의 영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서운 점은 넷플릭스가 수많은 OTT 기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지상파들은 이런 인터넷기반 스트리밍 기업들과 일합을 겨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마치 중세 유럽의 육중한 철갑 기사단이 몽골의 변칙 기병대에게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듯 방송시장을 내어줄 수도 있고, 지상파의 견고한 수성전략으로 상대방의 공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OTT 기병대를 맞이하기전 모든지상파들은 다양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지상파 자체의 스트리밍 플랫폼을 구축하고 소비자들에게 보급해야 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제휴를 맺고 그들의 망을 공유하는 유연한 전략을 펼칠 수도 있겠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향후 20년간 일반TV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VOD 스트리밍이 차지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을 굳이 20년 후에 확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미 스트리밍의 파도가 시작됐으니...
넷플릭스가 내년 한국에 들어온다. 전망을보면 ‘대변혁이 올것이다!’ 와 ‘한국 지상파 방송산업의 특성상 찻잔 속의 파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두가지다. 결과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장대한 태풍도 한낱 미미한 파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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