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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간발의 차

간발의 차

기차를 놓쳤습니다, 눈앞에서 열차 문이 닫히는데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보통은 20분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데, 그날따라 가는 길에 공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열차 시간은 맞출 것 같았는데, 간발의 차이로 차를 놓친 것입니다. 1분만 더 빨리 도착했으면, 아니 1초만 더 빨리 도착했어도 차를 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간발의 차’라는 말의 뜻을 그때 실감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정도의 미세한 차이라는 뜻 말입니다.


그런 순간에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또 약간의 분노도 있습니다.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연착하는 때도 많은 열차가 하필 그날이면 정시에 도착해 정시에 출발하느냐는 비이성적인 분노 말입니다. 그래도 이때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일은 다음 열차표를 사는 일입니다. 열차는 떠났는데, 아쉬움에 발만 굴러도 일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얼른 다음 열차표를 끊어야지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에게 교사들이 즐겨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1점이라고 합니다. 수시든 정시든 입학 사정을 하게 되고, 전국 수십만 명의 수험생 가운데 1점에 걸린 학생 수는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1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1점 때문에 합격이 될 수도 있고 불합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입사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1명을 뽑는 입사 전형에도 수만 명이 몰리게 되면 서류 전형을 거치고도 수백 명이 남습니다. 면접관들이 매긴 점수를 보면 동점에 몰린 사람들이 때로는 20~30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추가 기준을 적용하여 또 사람을 추려냅니다. 동점도 가려낼 정도이니 1점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1점 때문에 아예 고려 대상에서 빠지게 되니까요.


저는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시청률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다채널시대’인
요즘에는 드라마도 10퍼센트를 넘으면 선방했고, 15퍼센트를 넘으면 대박이라고 하게 됐습니다. 자연히 시사나 보도, 정보 프로그램의 경우 시청률은 거의 한 자리 수 시청률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시청률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방송사의 위상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1등 방송사’라고 하며 자사 홍보를 하게 되는데, 방송사로서는 이것이 여러모로 중요한 자산입니다. 우선은 구성원들의 사기일 것입니다. 시청자로부터 인정받는 회사에 다닌다는 자긍심은 사원으로서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촉매가 되겠지요.

 

"1은 그래서 단순한 1이 아니라
인생을 바꾸는 ‘전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만큼 중요한 이유는 시청률 기준으로 광고 수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대에 따라 SA급이니 A급이니 단위가 정해져 있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좋은 프로그램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광고주들이 광고를 붙이려 하기 때문에 수입이 크게 늘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협찬이나 ppl 같은 추가 수입을 시도할 때도 시청률은 무기가 됩니다. 동시간대 1위를 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시청률 5퍼센트와 6퍼센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9퍼센트와 10퍼센트는 큰 차이가 나는 느낌을 줍니다. 한 자리 수와 두 자리 수의 차이입니다.


평균 시청률은 서열에도 차이를 가져옵니다. 지상파는 우선 지상파끼리 시청률 서열을 매기는데, 상당수 경우에 1퍼센트가 아니라 0.1퍼센트 차이로 순위가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4개 채널 가운데 3위와 4위의 차이는 큽니다. 3위와 꼴찌의 차이가 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0.1퍼센트 차이로 1, 2위가 엇갈릴 수도 있습니다. 0.1퍼센트 차이로 2등이 되는 방송사는 ‘1등 방송사’라는 홍보를 할 수 없고 광고주들에게도 1등만큼 어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0.1의 차이가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입니다.


1의 차이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있지요.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말입니다. 닐 암스트롱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인으로 초등학생들까지 이름을 기억할 정도이지만 버즈 올드린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2위’ 우주인입니다. 한때 ‘2등은 기억해주지 않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는데, 이 글은 1등이 되자는 것이 아니라 1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1분, 1점, 1 퍼센트 ….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1이지만, 엄청난 차이를 내는 1의 중요성, 당신에게도 1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1은 그래서 단순한 1이 아니라 인생을 바꾸는 ‘전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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