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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회사 안 가는 날

회사 안 가는 날

이달 초,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모처럼 쉬는 날이었습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출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은 쉬는 근무 형태지만 대부분은 주말에 일정이 있지요. 경조사가 가장 많습니다. 상가 조문은 시간을 선택해서 갈 수 있지만 결혼식장은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합니다. 경조사 외에도 이런저런 일정으로 해서 대부분은 평일처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날은 아무 일정이 없었습니다. 습관대로 7시쯤 눈이 떠졌습니다. 평일이라면 얼른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지만 그날은 눈은 뜨고 이불 속에서 한참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근하지 않는 편안함’이 어찌나 짜릿하던지요.


저는 늦게 잠자리에 드는 편입니다. 새벽 두 시경에 잠자리에 드는데, 어떨 때는 세 시를 넘기기도 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심야형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나는 날이면 낯선 풍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카톡을 열어보면 벌써 그때 메시지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침을 여는 음악’, ‘오늘의 영어 명언’, 이런 식으로 정해진 주제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고 매일 아침 5시면 하루를 시작하는 단상을 보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벽형 인간’들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흔적들입니다. 내가 잠들어 있던 시간에 일어나서 새벽을 알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지요.


워싱턴 지사장으로 있던 2014년, 매일 저녁 라디오 방송을 했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이니 미국 동부는 새벽이었지요. 매일 새벽 4시경이면 일어나서 자동차를 몰고 워싱턴에 있는 사무실로 갔습니다. 집에서 방송을 해도 되지만 집 전화가 음질이 좋지 않아 사무실 전화기로 방송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럴 때면 늘 집 앞에 있는 주유소를 들렀습니다. 주유소에서 1달러짜리 커피를 사서 한 모금 마시고 운전석에 앉으면 몸과 함께 정신도 긴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일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주로 NPR(National Public Radio)을 들으며 뉴스 업데이트를 했지만 때로는 큰 소리로 CD를 켜놓고 들으며 갔습니다. 워싱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GW 메모리얼 드라이브를 달리며 새벽을 맞는 느낌은 경험한 사람만 알 것입니다. 그렇게 새벽에 방송을 끝내고, 사무실에 보관해둔 간이침대에서 한 시간쯤 눈을 붙이고 나면 아침이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이 어느 시기가 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직업 평생을 그렇게 보내고, 모처럼 토요일 아침에 이불 속에서 뒹굴어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아, 이런 날이 며칠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입니다. 그날은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 오전이 얼마나 편했으면 며칠 동안 그 기억이 유지됐습니다. 왜 그렇게 편안했을까를 속으로 따져보았는데, 그 휴식이 직업인의 휴식이기 때문이란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실, 우리 나이 무렵의 사람들은 정년을 목전에 둔 사람들입니다. 몇 년 있지 않으면 아무리 버틴다고 해도 직업 현장에서는 물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회가 정한 정년의 나이이니 본인이 원한다면 새로운 직업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휴일에 쉬면 엄청나게 고맙고 더 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쉬고 싶지 않아도 하루 24시간을 쉬어야 하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정년퇴직한 선배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사를 떠나보니 그 시절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겠다고 말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일이 있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이 어느 시기가 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일터를 가진 것이 감사하다고 말한 지인의 말을 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어쩌다 한 번, 일정이 없는 어느 날, 이불 속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달콤한 꿀맛을 경험하게 해주지만 말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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