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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선수’들은 다 안다

‘선수’들은 다 안다

얼마 전 서울에 주재하는 한 대사 부인과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관여했던 전시회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열었던 단체전이었는데, 지방의 한 회사가 그 전시회를 주관했던 모양입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전시회는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습니다. 외교관의 부인이 그렇게 비외교적(?)인 단어를 써가며 실망을 표하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실망은 개막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작품을 전시하는 외국 작가들이 여럿 참석한데다 초대한 외국인 손님들까지, 외국인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제대로 된 통역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역 문제를 거론하니, “이 도시에서는 나름 이름난 통역”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답니다.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회를 열면서 국제적 수준의 통역사를 고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소한 전시회를 소개하는 영어 브로슈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그 회사는 국제적 수준의 전시회를 유치하고 ‘국제적 망신’을 당했던 셈입니다.


저는 행사를 많이 가는 편입니다. 회사 대표로서 우리 회사가 주관하는 행사에도 참석해야 하지만 다른 기관이 주최하는 행사나 세미나, 콘퍼런스도 많이 갑니다. 자연히 비교가 많이 됩니다. 회사가 단단한 조직일수록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럽게 진행됩니다. 흔히 말하는 ‘흠 잡을 데 없는’ 행사라는 것은 참석자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행사가 아닐까 합니다. 행사 자체에 빠지거나 행사 내용을 즐기는 그런 행사 말입니다. 음악회면 음악 자체에 몰입할 것이고, 전시회라면 전시 작품을 보는 데 열중할 것입니다. 콘퍼런스라면 발표 내용에 집중하겠지요. 그런데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행사에 가면 꼭 딴 생각이 납니다. 왜 안내 표지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까, 왜 통역이 엉터리일까, 동선은 왜 이렇게 불편할까, 마이크에서는 왜 ‘퍽퍽’ 소리가 날까,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우리가 대충 하면 대충 한다는 것을,
‘선수’들은 다 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선수’들은 곳곳에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최악의 경우는 자신이 ‘엉터리’인줄 모르는 경우입니다. 통역사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데, “그래도 우리 도시에서는 나름 잘하는 사람”이라고 답을 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것은 언급된 ‘우리 도시’를 엉터리로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데, 뭘 더 기대하시나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지요. 동시에, 나는 이 정도 수준에 만족하는데, 참고 넘어가지 뭘 따지냐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수’들은 다 압니다. 우리가 대충 하면 대충 한다는 것을, ‘선수’들은 다 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선수’들은 곳곳에 버티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평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가수들의 공연입니다. 우리 회사는 가끔씩 가수들을 초청해 유료 콘서트를 주최하는데(기획사와 공동 주관하는 경우 포함), 잘 나가는 가수들은 별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표가 잘 팔립니다. 구매력을 가진 가수와 그렇지 않은 가수는 표 판매 진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인기 가수들은 거금을 주고도 일찌감치 표를 확보하겠다며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은 가수들은 할인을 해준다고 해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표가 잘 팔리는 가수는 ‘선수’들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고, 표가 잘 팔리지 않는 가수는 ‘선수’들에게는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얘깁니다. 물론, 실력이 있어도 ‘선수’들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예외들이 가끔씩 있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성공적인 행사를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행사를 예고하는 현수막 디자인에서부터, 현수막을 어떤 곳에 걸어야 하는지 장소 연구는 물론, 내방객들이 들어서는 행사장 입구에서 돌아가는 출구까지, 한 군데 불편함이 없도록 챙기고 또 챙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누군가로부터 ‘통역이 엉터리다’, ‘브로슈어도 제대로 없다’는 불평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자고로 금언으로 여겨지는 황금의 법칙, 즉 역지사지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겠습니다. 내가 내방객이라면 어떤 행사를 더 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보면 답은 명백합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말은 결국 내 수준이 그 정도라는 말입니다.


기사를 쓸 때는 마지막 순간까지 더 좋은 표현, 시청자들에게 더 정확하게 다가가는 표현을 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고, 영상 편집을 할 때도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더 맞는 화면을 편집할지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수’들은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릴 것입니다. 사회 곳곳에 ‘선수’들은 많고, 과거와 달리 선택의 여지는 너무나 많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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