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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1980년대 초, A교수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운동권’으로 활동하다가 적발돼서 ‘별’도 달았고 국내에서는 더 이상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학점은 바닥이었습니다. 평점이 1.2였다니, 한 교수의 추천을 받아 미국 유수의 대학에 입학한 것은 운이 좋았던 덕분이었습니다. 그 대학에는 같은 학교 출신의 모범생 B가 있었습니다. 잘 되지 않는 영어에, 낯선 외국 생활을 해야 했던 당시, A와 B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A는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결혼을 해서 가장이 되었으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유학을 가서는 국내 정치에 관심을 끊고 공부만 하자는 결심이 섰던 것입니다. 대학교 때 1.2였던 그의 학점은 유학 시절 만점에 가깝게 높았습니다. 영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로 노력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B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유학을 가기 전 다니던 국내의 명문대에서 그는 과에서 수석을 하던 모범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입학, 졸업 때까지 수석을 놓치지 않던 수재였습니다. 언제나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대학교에서 사정은 달랐습니다. A는 페이퍼를 내면 거의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B는 거의 최하점을 받았습니다. 차이는 분석력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요약·비평을 하라고 하면 A는 자신의 시각으로 분석을 하였지만 B는 그저 요약만 할 뿐이었습니다. B에게는 ‘시각’이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시키는 일은 열심히 했지만 자신의 주관은 없었던 B에게 유학 생활은 지옥이었습니다. 비판적인 분석을 요구하는 교수들은 아무런 시각 없이 타인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은 B의 페이퍼에 낙제점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A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던 B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최고의 명문대에서 수석만 하던 그에게 유학 생활은 견디기 힘든 수모였습니다. B의 장례식에서 A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독립적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면
‘확증적 편향’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일생동안 ‘오류의 감옥’에
갇혀 살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독립적인 사고(Independent Thinking)’였습니다. 평생 시키는 대로 살아온 B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반면, A에게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고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교수가 된 A는 항상 첫 수업에서 대학생들에게 ‘독립적으로 사고하기’를 강조합니다. 남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과 나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일생에 큰 차이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학점을 잘 받고 못 받고가 아니라 일생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순응’하며 살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주의와 주장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만 봐도 주의와 주장이 난무합니다. 이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그 사람들의 말이 모두 틀린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독립적으로 생각하려면 ‘정보’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얘기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고 그 주제에 대한 공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의도를 가진 거짓 정보도 많습니다. ‘가짜뉴스(fake news)’가 대표적입니다. 가짜뉴스에 속는 것은 교육 수준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위험한 것은 ‘확증적 편향’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는 정보만 맞다고 믿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틀렸다’라고 시인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확증적 편향'을 입증해줍니다. 여러 가지 ‘사실’ 중에서도 나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흡수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다보니 결론은 ‘내가 맞고 당신은 틀리다’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판단을 하기가 힘들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B가 유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어릴 때부터 ‘순치’되어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던 탓입니다. 독립적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면 ‘확증적 편향’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일생동안 ‘오류의 감옥'에 갇혀 살 수도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극단적인 대립 현상으로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가짜뉴스의 시대에 떠오른 단상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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