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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돌멩이국

돌멩이국

저녁 무렵 나그네가 어느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끼니때가 되어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날만큼 배가 고팠습니다. 요즘처럼 식당이 흔한 시절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의탁을 해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 문을 두드려도 저 집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드물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있어도 한 끼 달라는 말에는 정신 나갔냐는 듯이 흘겨보고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마을은 몇 년 동안 가뭄과 홍수가 거듭되면서 이웃 간의 왕래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내가 먹고 살 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 챙길 것이 어디 있냐는 겁니다. 주민들 간의 대화는 사라지고 싸늘한 냉기만이 마을을 감돌고 있었습니다.


다른 마을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 굶어죽을 위험에 처한 나그네는 마을 한 가운데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아, 내 말 들으시오. 나는 돌멩이로 국을 끓이는 사람이오.” 돌멩이로 국을 끓인다는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끼, 이 사람아. 돌멩이로 어떻게 국을 끓인다는 말이오. 당신, 사기꾼 아니오?” 그러자 나그네는 여전히 돌멩이로 국을 끓일 수 있다고 우겼습니다. 설왕설래가 계속되다가 급기야 내기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내기에 참여한 사람이 솥을 가져왔습니다. 나그네는 주변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깨끗이 씻어 솥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끓이던 나그네는 주위의 사람에게 “무가 있으면 국이 더 맛있을 테니 무 하나만 갖다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가 무를 가져오자 툭툭 썰어 솥 안에 넣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배추를, 또 다른 이에게는 당근을 요구했습니다. 슬그머니 고기 한 덩어리도 구해다 넣었습니다. 돌멩이를 넣은 솥에서는 점점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국 앞에서 사람들은 돌멩이국이 만들어질 수 있나를 보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나그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돌멩이로 국을 끓인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마술같이 만들어진 맛있는 돌멩이국을 먹으면서 나그네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돌멩이국은 여러분들이 가져온 국 재료를 모두 합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가지의 국거리만 가지고 왔지만, 그 재료들을 모두 합쳤을 때 맛있는 국이 되는 겁니다.” 가뭄과 홍수가 거듭되면서 먹을 것이 줄어들었고 이웃 간의 왕래를 끊고 혼자만 살겠다고 문을 걸어 잠근 사람들은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려울수록 힘을 합해야만 모두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돌멩이국> 속의 마을은

가뭄과 홍수 때문에 황폐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교류를 끊었기 때문에

불행해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명의 <돌멩이국>이라는 동화입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비슷한 일을 목격합니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더합니다. 그 조직이 본부이든 국이든 그 조직 하나가 ‘세계’입니다. 내 조직이 우선이고 내 조직만이 전부입니다. 타 조직에서 지원을 요청하면 가급적 관여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유는 많습니다. <돌멩이국>의 마을 사람들이 가뭄과 홍수를 핑계로 삼고 이웃과의 교류를 끊었듯이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지원을 요청하면 사람이 없다, 할일이 있다며 가능하면 관여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반대로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타 부서에서는 모른 척할 것입니다.


동화를 읽을 때는 <돌멩이국>의 마을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하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그 사람들 이상의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돌멩이국> 속의 마을은 가뭄과 홍수 때문에 황폐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교류를 끊었기 때문에 불행해진 것입니다. 정치는 더 그렇습니다. 내가 이끄는 정당만이 지상의 천국을 가져다줄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치면서 다른 정당과는 협치를 외면합니다.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존재한 제도 가운데 그래도 가장 나은 제도라는 것은 구성원 각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집단지성으로 모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이 지배하면 그 조직의 미래는 없습니다. 무를 가져오고 당근을 보태야만 맛있는 국이 됩니다. 식재료를 합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동화보다 훨씬 어리석은 삶을 삽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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