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조선 도자기 기술을 강탈하기 위한 전쟁이었죠.
그렇게 한국 도자기의 DNA가 이식된 일본 도자기는
전 유럽의 도자기 시대를 깨웠습니다.”
비자 거절부터 촬영 불가까지, 시작부터 무모한 도전
도자기 종주국에서 온 한국 촬영팀에게 유럽 도자기 명가의 시선은 차가웠다. 아시아와 유럽 10여 국을 돌았지만, 흔쾌히 공장 내부를 공개하는 일은 없었다. 기술 유출을 이유로 매번 ‘촬영 불가 지역’이라며 카메라를 막아섰고,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 제약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날아갔지만 자신들의 휴가철이라며 문전박대하던 유럽의 어느 도자기 회사도 있었다.
“촬영 2달 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렵게 촬영 허가를 받아서 공장 내부를 찍다가도 늘 막아서는 지점이 있어요. 제한 구역이라는 게 은근 오기를 부르잖아요? 어쨌든 최대한 들이댔죠.(웃음)”
내공 없는 PD는 시도도 못 하겠다는 말에 김종훈 PD가 웃는다. 보유한 기술력만큼 담도 높고 콧대도 높은 도자기 명가를 촬영하는 일은 제작 초반부터 사기를 꺾기 충분했다. 촬영 비자를 번번이 거절하는 중국을 상대하는 일이나 조선 도공을 자신의 국보로 ‘모시는’ 일본을 취재하는 일도 적잖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도자기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의 활로를 모색하는 뼈아픈 고찰은 필요했다. 종주국에서 이젠 이름도 알아주지 않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위해 대전MBC 창사52주년 특별기획 3부작 <화이트골드, 400년의 여정>은 그렇게 제작됐다. 그리고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오는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상을 받는다.
‘그릇’에 머문 한국 도자기 vs
바다를 건너가 ‘문화 아이콘’이 된 도자기
대전MBC 창사52주년 특별기획 3부작 <화이트골드, 400년의 여정>이 방영됐던 2016년은 조선 도예가 이삼평(李參平)이 일본에서 처음 도자기를 만든 지 400년이 되는 해였다. 일본은 지난해 자신들이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하는 이삼평의 업적을 기리는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며 도자기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강탈한 문화로 전 세계 도자기 시장의 맹주로 군림하는 그들의 행사를 지켜보며 한국의 도공들은 쓰게 웃었다. 400년 전, 중국과 조선만이 보유했던 비밀스럽고 신비하기까지 했던 도자기 제조법은 자본과 결합된 기술의 변주를 거쳐 전 세계에서 무한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과 조선, 일본에서 밥과 차를 담던 자기는 바다를 건너 여왕의 만찬 그릇으로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국가에서 주도하는 유럽의 도자기 산업은 이제 그들의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그 자체가 됐다.
“유럽에서 도자기에 쏟은 자본과 노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죠. 중국과 일본도 비슷한 맥락을 거쳐 발전시켰지만, 과학과 결합한 유럽의 융·복합적인 시도는 앞으로 도자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김 PD는 조선 도자기에 대한 애정만큼 본인의 의도가 프로그램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자신의 역량을 탓했다. 이천에서 촬영했던 김판기 도공의 작품(3부 ‘전통, 혁신을 더한 이름’ 편)이 인천국제공항 한쪽에 전시된 것을 보고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우리 것에 대한 조명을 조금 더 깊게 카메라에 담아 알리고 싶었지만 욕심에 미치지 못했다. 도자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본 사람은 차를 마시기 전 찻물을 담은 도기부터 감상하는 버릇이 있다. 흙과 불이 빚은 빙렬과 손끝에 전해지는 도기의 외형을 끊임없이 쓸어보고 감상하며 감탄하는 일종의 제의적(祭儀的)인 절차다. 아무렇게나 구운 도기에서도 선(線)의 미를 찾는 그들에게 도자기 맹주의 자리는 귀납적인 보상이었으리라.
식탁 위의 예술품, 아버지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밥그릇
1년을 계획했지만, 촬영 기간은 7개월 남짓. 10여 개국을 돌아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 속에도 꼭 욕심나는 곳은 정작 포기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중국 도자기의 상징인 징더전, 그리고 헝가리의 헤렌느였다.
“중국은 출발부터 비자 문제로 힘들었죠. 하지만 징더전은 도자기 역사에 대명사 같은 곳인지라 꼭 촬영하고 싶었어요. 어찌어찌 중국 징더전에 도착을 했는데 징더전 여성 연구원이 인터뷰를 대가로 현금을 요구했어요. 이 수상한 거래에 도저히 응답할 수 없어서 대신 예쁜 꽃다발을 선물로 건넸어요. 그러자 씩~ 웃으며 꽃다발을 연구소 한쪽에 휙 던져 버리더군요.(웃음) 헤렌느는 아예 일정이 용납되지 않아서 못 갔고요. 아쉽죠.”
이제 정년을 코앞에 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PD가 타국에서 어린 연구원에게 꽃다발을 건네면서까지 찍고 싶었다던 징더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그의 말속에서 도자기에 대한 애정은 도자기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도자기처럼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술품은 없죠. 장식장에 있을 때는 예술품으로, 식탁에 올려놓으면 생활 도구인 식기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도자기에요.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그릇을 감상하며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화이트골드’라고 불리는 도자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조선 도자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살아나길 기대한다며, 그때 자신이 기록한 150분간의 여정이 장작처럼 쓰이길 바란다며 김 PD는 환히 웃었다.
안시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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