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특집 취재차 다녀온 두 번의 해외 출장. 작은 학교, 나아가 교육의 현주소와 미래를 취재하기 위해 국내 취재를 하던 중 우리나라보다 먼저 같은 고민을 하고, 서둘러 미래에 대비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가 궁금해졌다. 전자는 일본, 후자는 미국이었다. 제작 예산부터 일정, 현지 코디 섭외 등 해외 출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이번이 처음. 부디 예정된 취재 일정만이라도 무사히 소화할 수 있기를 …. “특집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완성되는 것이다.” 모 선배님의 조언을 되뇌며 비행기에 올랐다.
‘폐교’ 아닌 ‘휴교’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오사카에서 현지 코디와 만나 차로 5시간을 이동해 첫 번째 목적지인 효고현 카미 마을에 도착했다. 카미 마을은 인구가 1만 9,000명으로 충청남도 청양군보다 1만 명 가까이 적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가 10곳으로, 12곳인 청양군과 비슷하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슈퍼 챌린지 플랜’이라는 교육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학생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고민하던 카미 마을이 위기 타파를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이 제도가 각광을 받으면서 각 학교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카미 마을은 권역별로 학교를 3~4개 묶어서 한 달에 하루씩 한 학교에 모여 수업을 진행한다. 각 학교의 학생 수가 30~50명이니 200명 안팎이 한꺼번에 모인다. “큰 학교의 장점과 작은 학교의 장점을 함께 살리는 제도로 각 학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으며 ....” 다양한(솔직히 조금 지루한) 설명이 오가는 사이 마을 학교 현황 가운데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아마루베소학교 미사키분교 - 학생 수 1’. 일본 문부과학성은 학생 수가 없는 학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음 입학생이 들어올 때까지 잠시 문을 닫는다는 설명이 더해졌다. ‘폐교’가 아니라 ‘휴교’라니 …. 즉석 섭외를 요청했고, 다음날 일정을 조정했다.
바닷가 끝 산중턱의 움푹 파인 곳에 자리한 마을. 주민은 70명.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까지 더해 인기척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1층 건물과 운동장. 학교였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한 학교. 교실과 운동장, 체육관과 교무실. 없는 게 없었다. 3학년 오카다 학생이 직접 한글로 적은 환영 인사가 우리를 반겼다. 개교한 지 꼭 102년이 됐지만 문을 닫은 적은 없다고 한다. 오카다 학생이 4학년이 되면 본교로 옮겨야 하는데, 다행히 오카다의 남동생이 입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약 오카다의 동생이 없었더라도 폐교할 리는 없다. 잠시 휴교할 뿐이다. 올해 89살인 오카다의 증조할머니는 이 학교 덕분에 이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었다. 일단 폐교되면 다시 살리기 힘든 우리나라에서 이런 것이 가능할지, 궁금하고 부러웠다.
교육도 소통이 우선
카미 마을에서 오사카까지 승용차로 5시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을 날아 아키타현으로 향했다. 일본 최고 수준의 학력으로 소문난 아키타현 히가시나루세 마을. 우리를 반긴 건 친절한 교사와 학생, 그리고 무릎 높이까지 쌓인 폭설이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이름난 이 마을의 ‘해피스쿨 프로젝트’. ‘학교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 아래 지자체는 한 해 예산의 10%를 교육에 투자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교육의 메카’를 만들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작은 학교 통폐합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지난해 4월, 인근 4개 학교를 하나로 합친 아키타현 유와소학교는 추진에서 새 학교 개교까지 9년이나 걸렸다. 주민과 교사, 학부모, 전문가가 모인 추진위원회가 발족해 수많은 의견 교류를 거쳤기 때문이다. 소통이 이뤄지니 반발도 없다. 우리나라가 통폐합을 두고 곳곳에서 마찰이 빈번한 것과 비교하면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은 교육
설 연휴의 끝자락에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과 워싱턴 D.C,, 프로비던스를 오가는 일정이었다. 미국의 두 학교 유형, 커뮤니티스쿨과 메트스쿨을 살펴봤다. 학교의 시설과 서비스를 활용해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커뮤니티스쿨, 반대로 지역 주민이 마련한 인턴십 프로그램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직업 훈련과 진로 선택의 기회를 갖는 메트스쿨. 방법은 다르지만 두 유형의 학교 모두 지역 사회 깊숙이 자리한 점은 같았다.
취재를 마치며, 문득 지금 우리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숲 가운데에 세워진 낮은 건물, 좁은 운동장. 하교 시간이 되면 썰물처럼 학생들이 빠져 나가고, 다음날 아침까지 텅 빈 공간이 된다. 반면 도심 학원가는 불야성을 이룬다. 학생들의 공부는 학교 대신 학원에서 이뤄진다. 피로가 쌓인 학생들은 학교에서 졸기 일쑤다. 입시, 성적에 매달린 교육. 학교는 입학할 나이가 되면, 등교 시간이 되면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혹은 보내야 하는, 거쳐야 하는 의무적인 공간이 된 것은 아닐까? 가까이 있지만 우리 동네, 지역 사회와는 동떨어진 장소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지. 지역 사회와 학교의 공존은 정말 가능할까? 미래의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다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이승섭 기자 / 보도국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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