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쇼는, 파격이다
1985년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한 후, 빠른 속도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올린 디자이너 이상봉.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회자되기 시작한 건 1993년, SFAA 서울 컬렉션에서 ‘환생’을 테마로 한 파격적인 쇼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천편일률적인 패션쇼에서 벗어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새로운 삶을 표현하는 스토리로 대중들의 넋을 잃게 만든 이상봉은 이후로도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격적인 쇼들을 연출하며 대중과 패션업계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그 짧은 10분을 위해 디자이너는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쇼를 준비하죠. 국내 패션쇼는 좀 나아요. 그런데 해외에서 쇼를 할 땐, 쇼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관객석을 채우고 있던 기자들이 물밀듯이 빠져나가 버려요. 휑해진 관객석을 보면, 마음 한 쪽이 허해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쇼 무대에 오를 때 가장 빛나고 행복한 사람이 바로 디자이너라고 그는 말한다. 브랜드 런칭 후 32년 동안 그가 무대에 올린 쇼는 무려 200여 회. ‘쇼’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우는 작업 역시 200여 회를 반복했다는 뜻이다.
운명처럼 만난 한글
그리고 2006년, 파리에서 열린 ‘Who’s next’ 무대. 이상봉 디자이너의 시그니처가 될 한글 컬렉션이 전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한글을 처음 패션에 접목시키겠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 모두가 저를 말렸어요. 왜 그렇게 촌스러운 글자를 패션에 쓰려고 하느냐는 게 이유였죠. ‘여기에 발목이 잡힐거다’, ‘망할 거다’,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지금이야 그림 같기도 하고 문신 같기도 한 독특한 한글 문양이 멋스럽게만 보이지만, 그때는 그 누구도 한글이 패션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용어 하나도 우리말보다는 영어를 선호하는 패션업계에서 한글은 패셔너블한 구석이 한군데도 없는 문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한 이유요? 글쎄요. 오기 아니었을까요?”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하라’는 그의 작업실 입구에 걸려 있다는 문구처럼 그는 도전했고, 그 무모한 도전은 예상보다 더 큰 결실을 맺었다.
낭만 디자이너, 이상봉
패션계에 입문한 이후 줄곧,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온 이상봉 디자이너.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디자인에 독보적인 재능을 보였을 법한 그지만 예상 외로 패션계에 입문한 계기는 소박했다.
“원래는 연극 무대 위에서 연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첫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일주일 전에 도망쳤죠. 도망쳐서 세상과 담을 쌓고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동네 수선집이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걸 봤어요. 그런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수선집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겠다. 그래서 복장학원에 들어간 거예요.”
그 작은 동네 수선집이 그의 인생을, 그리고 어쩌면 대한민국 패션계의 운명을 바꿔놓은 셈이다.
K패션의 미래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 이상봉. 그런 그에게 아프지만, 반드시 해야만 했던질문을 던졌다. 2년 전, 승승장구하던 그의 발목을 잡아챈 바로 그 ‘열정 페이’ 사건.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상봉에게 그 일은, 뼈아픈 기억이었다.
“아팠죠. 몇 번인가 …. 차라리 내가 잘못되어 버리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한동안 외부 활동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지냈어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시야가 넓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동안은 잘 하는 친구들, 열심히 하는 후배들만 다독이고 응원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궂은 날씨 뒤에 하늘이 더 청명해지듯, 오히려 시야가 트였다는 이상봉 디자이너. 구설수에 휘말린 채 그대로 멈춰있기에는 그를 원하는 사람도, 그가 해야 할 일도,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특성화 고등학교가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이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사회에 나가야 하는 입장인 거죠. 그런 친구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시작된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패션 콘테스트부터 멀리는 K패션의 중국진출까지,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의욕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었다.
“저희 성균관대 의상학과 학생들인데요. 선생님 나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왔어요!”
녹화가 끝나자마자 우르르,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몰려든다. 뜻하지 않은 만남. 이상봉 디자이너의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다음에 만나면 꼭, 오늘 만났었다고 이야기해줘. 응? 꼭! 꼭! 다시 보자.”
몇 년 후, 혹은 몇 십 년 후, 후배들과 다시 만나 오늘을 떠올리고 싶다는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소년 같았던 그의 미소와 함께, 막을 내렸다.
강미희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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