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사모광장

도시 재생 사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대전

지금은 포르투갈 리스본이다. 대전대 교수가 되고 나서 방학 기간을 이용해 시작한 해외 배낭여행이 올해로 18년째이다. 여행의 대부분은 가족들과 함께해 식구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일정을 잡으려고 하나 적당한 코스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인 둘째가 다녀온 나라가 얼추 25개 국이 넘으니 열심히 다닌 셈이다. 가능하면 겹치지 않게 다니려고 하지만 가끔 식구들이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나라가 있게 마련이다. 그곳 중의 하나가 포르투갈이다.


재작년 이맘때쯤 포르투갈 리스본과 포루만을 잠시 거쳐 갔는데도 우리 식구들의 머릿속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다정다감한 정이 많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결국 가장 인상깊은 여행지는 그곳의 아름다운 유적지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누구를 만났느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리스본도 그렇지만 유럽 대부분의 중요 도시를 가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도시를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구도심은 짧게는 수십 년의 역사에서부터 길게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유적지를 보존하는 곳이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그 도시를 방문할 때 대부분 구도심에 머물러 구경하는 경향이 많다. 그만큼 구도심은 외지인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고, 들여다보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대전에서는 원도심 활성화에 많은 투자를 해 왔다. 그 성과로 대흥동, 은행동 일대가 예전에 비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이제 원도심 활성화는 더 이상 그 동력을 얻기가 어렵다고 본다. 번화한 중심가 어디에서나 흔하디흔한 풍경이다. 대전의 원도심만이 가지는 특징이 없다. 전국 어디에나 볼 수 있는 체인점, 수많은 커피 전문점, 미용실, 옷가게, 음식점 등 구태여 대전을 오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원도심 활성화로 인해 전통적인 특색을 가졌던 거리들이나 의미있는 공간 등이 잊혀 가거나 퇴색해 가는 것이 문제다. 약방거리, 화랑거리 등을 포함해 근대역사 이후 대전의 중요 거점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원도심 활성화를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너무 협소하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즉 원도심 활성화를 통해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맞지만, 근본가치는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찾는 데 있는 것이다.


원도심은 그 도시의 역사이자 얼굴이다.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것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소외되고 파괴되었던 도시를 다시 재생하여 그 도시 고유의 색깔을 복원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난 몇 년간의 원도심 활성화는 부분적인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엇나간 목적으로 인해 그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사람들만 모으면 그 사람들이 알아서 돈을 풀 것이라는 낭만적인 발상들이 원도심에서의 원칙 없는 축제의 남발, 차 없는 거리 등의 행사를 연이어 열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방향도 구체적인 운영 방안도 벽에 부닥친 원도심 활성화 문제는 이 시점에서 대전시를 포함해서 대전시민 전체가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단순한 원도심 활성화에서 벗어나 대전의 잃어버린 얼굴을 되찾는 ‘도시 재생’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의 구도심에는 근대화의 역사적 가치가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 곳이 방치되어 있다. 개발하기에는 지리적 위치 등으로 인해 아직 손을 못 대고 있지만, 언젠가는 개발의 희망 때문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단순히 이런 건물이나 장소를 옛 모습으로 그대로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능하면 그 장소나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면서 실용적인 가치로 재창조해 나가는 것이 도시 재생의 출발점이다. 파리 오르세역이 세계적인 ‘오르세 미술관’으로 탈바꿈하고, 쓸모없던 화력발전소를 ‘테이트 모던 갤러리’로 바꾼 런던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제 대전도 그 본연의 얼굴 찾기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대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만약 없다면 그건 대전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애초부터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우리 스스로 그 이미지를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는 데 관심이 없어 실패했기 때문이다. 매번 역대 시장들은 대전을 상징할 만한 축제 만들기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 왔다. 그러나 번번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없는 데서 억지로 쥐어 짜내야 하니까 그렇다. 그런 면에서 도시 재생 사업은 역대 시장들의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