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닫혀있는 문이 있다. 문 너머에서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는 듯, 고소한 향기가 스며나온다. 물도 양식도 떨어져가는 우리는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문이 열릴 때까지 계속 두드려야만 할 것인가? 정답은 ‘NO’다. 두드리고만 있어선 안 된다. 문손잡이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열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노래도 해보고, 소리도 질러본다. 문 저쪽에 사람이 있다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흥미를 끌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비록 열리지 않는다 해도, 열었지만 기대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문을 열고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기억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재산이 될 것이다. 그것은 후대에게 무척 값어치 있는 유산이 될 것이 틀림없다.
‘드라마 해외진출로 한류 선도’, ‘명품 다큐멘터리 해외 판매’, ‘방송포맷 해외수출’, ….
이제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다만, 지역방송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기치 아래 글로컬(GLObal+loCAL)방송을 지향하지만 지붕 위의 닭을 바라보듯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이 열리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알고 있다 해도, 왜 열어야 하는지, 거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노크만 할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혀 여유롭지 않은 인력으로 정규프로그램과 뉴스, 특집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지역방송의 구성원으로서 자체 제작 콘텐츠의 해외 진출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다가 얻어걸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대전MBC 콘텐츠의 해외 진출! 물론 몇 번의 시도가 있었고 소기의 성과도 얻었다. <고려인삼은 火를 내지 않는다>는 2012년 베트남어로 재제작되어 베트남에 방송됐고, 2013년에는 대만에 방송됐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를 다룬 <끝나지 않은 재앙>은 2009년 휴스턴국제필름페스티벌에서 탐사보도부문 대상을 받았다. 최근엔 <갈릭루트>가 홍콩에 방송을 전제로 판매되었다.
자체 콘텐츠 마케팅팀도 구성돼 있지 않고, 판매 루트도 전무한 상황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도 뭔가를 해야만 하는데 ….
올해부터 한국전파진흥협회에서는 우수한 지역방송 콘텐츠의 영문버전 제작 및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5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BCM(Busan Contents Market) 2016’에서 지역방송 부스를 만들어 가능성을 타진해보더니 12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ATF(Asia TV Forum & Market) 2016’에 대한민국 지역방송 부스를 설치, 지역방송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가를 요청했다. ATF는 아시아 최대 TV 프로그램마켓으로 매년 5천여 명의 바이어와 관계자가 비즈니스 미팅, 컨퍼런스 등의 행사에 참가해왔다.
대전MBC를 비롯한 지역 MBC 5팀과 민방 5팀 등 총 10개 지역사는 처음으로 ATF 출품자로 참여, 현장에서 해외 바이어들과 면담을 통해 자체 콘텐츠의 우수성을 알리고 구매를 권장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대전MBC는 선정된 <고려인삼은 火를 내지 않는다>, <무령왕의 꿈, 갱위강국>, <잊혀진 재앙> 등 다큐멘터리 3편과 단편드라마 <낡은 기억의 잔해> 외에 <맛있는 처방전>을 별도로 준비해 미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의 바이어들에게 자체 콘텐츠를 홍보하고 판촉활동을 벌였다. 계약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이메일을 기다리는 중이긴 하지만, 이번 활동은 해외진출이 갖는 의미와 함께 어떤 준비가 돼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면담을 해본 결과 다큐멘터리의 경우 시리즈물을 선호하고, 여행 및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 호감을 갖고 있으며 짧은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컸다. 자체 콘텐츠의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다면, 기획단계에서부터 구매자들의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
지역의 여론을 선도하고 지역 소식을 밀도 있게 전하면서 시청률 향상에도 힘쓰고 있는 지역방송의 입장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자체 프로그램의 해외진출은 ‘빛 좋은 개살구’로 여겨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지원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며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두드려야 할 이유는 충분히 존재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은표 / 편성제작국 편성기획부장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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