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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워싱턴 ‘Walking holiday’를 가다! - 로컬푸드 광역직거래센터 운영을 위한 워싱턴 탐방 뒷이야기

 

 

등산복 입지 말자
오승용 경영기술국장, 이감우 FNC 이사, 송영철 사원, 그리고 나(김경섭). 이번 워싱턴 사원 연수에 참여한 네 사람이 모인 첫 자리에서 나온 말은 ‘등산복 금지’였다. 워싱턴이 미국에서도 계획도시이자 직무 전용 도시라서 고위공무원과 전 세계 인텔리들이 모이는 곳이라 그만큼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점퍼나 등산복을 걸치면 촌스런 관광객(?) 취급 받기 딱 좋다는것.


자칭 타칭 대전 대표 패셔니스타인 나는 스스로 어깨가 무거워졌고 ‘충청도의 멋을 보여 주마’ 다짐하며 대형 캐리어까지 새로 장만을 했다. 정장 세 벌과 재킷 두 벌, 코트와 그에 맞춘 신발도세 켤레. 아내는 짐을 싸며 패션쇼를 하러 가냐며 핀잔을 줬지만아랑곳 하지 않았다. 내게는 ‘동양인도 세련됐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I like your jacket."
덕분에 나는 워싱턴 연수 중 무려 세 명의 미국인에게 이 말을 들었다. (모두 흑인이었다. Why?) 거의 모든 일정이 워싱턴 시내를 도보로 걷는 일이었고 박물관과 뮤지엄, 관공서 출입이 잦은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동양의 지식인. 일단 외형적으로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국장님, 도와주세요!”
연수 전 국장은 각자 현지에서 임무(?)를 정했다. 오승용 국장은 종합 일정관리 및 총괄, 이감우 FNC 이사는 FNC 관련 사업담당, 그리고 송영철 사원은 당연히 총무. 마지막으로 나에게는 가장 막중한 역할인 통역이 맡겨졌다. (참고로 나는 노어노문학을 전공했다). 허우대만 멀쩡하면 뭘 하겠는가. 나는 그 임무를 맡은 다음날부터 깊은 고뇌에 빠졌고 구글번역기 포함 번역 어플을 마구잡이로 다운받았으며 간단한 요즘 중학생 수준이라는 ‘해외여행회화첫걸음’이라는 책도 사서 공부를 했다. 가이드도 현지 코디네이터도 없었다(코디네이터 도움을 받은 건 단 하루, 현지인 인터뷰와 기관 섭외 등을 위해서였다). 인천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말 그대로 가시방석에 앉은 듯 번역기 사용법을 익혔고 나름의 굳은 다짐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호텔에 예정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우리는 이른 체크인을 해야 했으며 나는 그것을 영어로 호텔 측에 전달해야 했다. 그런데 알고 있는 모든 단어와 문법을 머릿속으로 바쁘게 조합하는데 짧고도 무척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순간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오승용 국장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복화술로 도움을 요청했다. 마치 구세군처럼 나타난 영문과 출신의 국장은 유창한 영어로 단숨에 그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곧 깨달았다. ‘인정하고 포기하자’. 한국에 도착해서도 그 유창한 영어를 잊을 수 없다. 그 영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조금 덜 보고 덜 먹고 더 고생했을 것이다(국장님 감사합니다!).


통역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나는 이참에 배우자는 심정으로 아침마다 ABC, CBS, NBC 미국 지상파 3사의 아침 프로그램 모니터를 하기 시작했다. 현지 인기 방송을 모니터해서 <아침이 좋다>에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하라는 사장님의 특명도 특명이었지만, 이참에 나도 한번 듣는 귀를 뚫어 보자(?)는 소박한 야심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일정 내내 막혀 있던 귀가 마지막 날 아침에 뻥(?) 뚫리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Working? or Walking!!
이번 연수에서 우리는 거의 전 일정을 걸어서 소화했다. 대중교통비도 워낙 비쌌거니와 타고 내리는 것에 불필요한 신경을 쓸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워싱턴 곳곳의 다양한 풍경을 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웅장하고 화려한 면모는 지극히 체계적이고 정교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에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워싱턴이었다. 워싱턴 D.C.는 근거리 동선과 교통체계, 관공서의 배치와 박물관, 뮤지엄까지 모든 건물과 도로가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우리의 세종시와 비슷한 느낌이었으며, 워싱턴 D.C.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역할 역시 한 치의 거품도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당시 뉴스를 통해 시스템이 무너진 우리나라 정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접할 때라 무척 착잡한 심경이 들기도 했다. 걷는 동안 추위와 배고픔과 체력적 한계를 느끼는 순간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워싱턴에서의 Walking은 그 도시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방편이었던 듯싶다.

 

 

 


바깥 구경 한 우물 안 개구리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타 직종과 달리 아나운서는 주어진 방송을 지켜야 하고 스튜디오를 지켜야 하므로 바깥세상(?)을 구경할 기회가 많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이번 연수는 나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늘 방송국 내에서 주어진 방송만 하는 우물 안 개구리인 나는 바깥세상을 구경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 크고 넓은 세상에서 내 우물에 필요한 것, 내 우물에 잘 어울릴 만한 것을 어떻게 우물 안으로 가지고 갈 것인가. 빼곡하게 메모하고 카메라에 담았지만 우물로 돌아오니 그저 막연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다. 바깥 물(?) 좀 먹고 온 개구리로서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우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김경섭 아나운서 / 편성제작국 제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