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코미디언을 꿈꿨다. 그가 들고 나온 낡은 스크랩에는 구봉서와 서영춘을 위시한 당시 코미디언에 대한 기사가 고이 간직돼 있었다. 꿈을 이루기까지 무대 뒤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며 웃음기 쏙 빠진 삶을 살았다. 이윽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진행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언제든 ‘뭐 필요한 거 없수?’라고 익살스럽게 물을 것만 같은 그는 내일모레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610km에 달하는 국토대장정을 완주하며 버킷리스트의 첫 칸을 지웠다. 코미디언 이홍렬. 그가 <허참의 토크&조이>에서 38년간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허참의 토크&조이> 녹화 전, 공개홀에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이홍렬이 걸어 다닌다. 입 한 번 열지 않았는데 방청객은 벌써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신호탄처럼 이홍렬은 동네 마실나온 부동산 주인처럼 이것저것 잔소리를 구시렁거리며 웃음 폭탄을 투척한다. 주인 없을 때 욕하자며 허참을 향해 날리는 오두방정에 방청객은 눈물까지 찔끔 흘린다. 전파를 타지 못해 아쉬운 ‘이홍렬쇼’가 허참의 등장으로 강제 종료될 때까지 그의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게스트를 들었다 놨다, 마침내 제자리로 돌려놓는 현란한 진행자 허참과 농익은 유머와 만 점짜리 순발력으로 무장한 백전노장 코미디언의 대결은 그야말로 개그 배틀. 자신에게 코미디언 길을 열어 준 ‘은인’ 허참과 함께한 세월이 깊어 서로의 웃음 코드를 알기 때문일까. 11일에 방영 예정인 <허참의 토크&조이>‘이홍렬 편’은 어느 때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 정이 뚝뚝 묻어난다.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형과 동생처럼, 그들의 대화는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중을 가벼운 말장난으로 위장하며 이어졌다.
참을 수 없는 수다의 즐거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누구나 아쉬움과 쓸쓸함이 남는 법이지만 이홍렬은 자신이 출연한 이 시간이 즐겁길 바랐다. 이 직업의식 투철한 코미디언의 속내를 알기에 허참의 응수 역시 진지함의수위를 조절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먼저 떠난 선배 코미디언을 회상하거나 부모님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할 때는 해맑은 얼굴로 ‘화장실에서 떠온 물 한 잔 마시고 해’라며 게스트의 개그본능을 자극한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허참과 이홍렬의 수다는 누구도 막기 어려워 보였다. 노련하고 입담 센 두 MC의 토크이니 진행은 물론 핵을 짚는 질문도 탄산수 급이다. 다만 둘 다 MC로 산세월이 길어 주객이 자주 바뀐 것만 뺀다면. 억지스럽게 유행어를 구간 반복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는 유머로 지친 시청자라면 ‘이홍렬 편’ 토크&조이를 환영할 것이다. 학창시절 닭 볏처럼 머리를 밀고 응원단장을 하던 청년 이홍렬부터 어느덧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인생을 돌아보는 노년의 모습까지, 잔잔한 웃음으로 버무린 담백한 토크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최초의 쿡방 사례로 손꼽힌 <이홍렬쇼>(1997)의 ‘참참참’ 코너부터 주책바가지 할머니로 분해 발차기를 해대던 <귀곡산장>, 이제 그의 시그니처처럼 따라다니는 500원짜리 동전에 얽힌 뒷이야기 등 이홍렬이란 이름으로 사랑받기까지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달려 나온다. 제발 1분만 조용히해 달라는 아내의 구박에도 꿋꿋이 수다를 떤다는 그에게 멍석까지 깔린 자리니 물 만난 물고기는 자맥질에 다이빙까지 사양하지 않는다.
100편이 넘는 프로그램 속에 웃음을 묻었던 그가 짬짬이 발표했던 노래와 책, 멈추지 않았던 도전과 기부, 그리고 악극의 변사와 인생 강의 <즐겁게 사는 법에 대해> 강사로 변신한 사연을 멈추지 않는 수다로 쏟아낸다. 눈물까지 쏙 빼며 방청객을 웃겨 놓은 그가 녹화가 끝난 후 아쉽다는 듯 한 마디 던진다.
“오늘 토크 너무 진지했어.”
안시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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