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TV는 바보상자라고 했던가? 1990년대 말부터 텔레비전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우려하는 극단적인 표현이 등장하였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IPTV의 등장과 함
께 비슷비슷한 콘텐츠들이 범람하는 TV채널들을 습관적으로 계속 돌려가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양질의 콘텐츠를 찾게 된다. 피로할 정도로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도긴개긴한 소식들 속에 대전MBC 특별기획 <화이트 골드, 400년의 여정>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필자가 컨벤션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2012년 10월, 독일 드레스덴으로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위치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및 유관 벤처기업 대표들과 함께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드레스덴 현지 기관과의 예정되어 있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치고 출국 전 하루 정도의 자유시간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이 ‘유부남’이었던 연구원들을 위해 예정에도 없던 미니버스를 빌려 그들만의 접시(?) 쇼핑을 지원했던 적이 있다. 드레스덴의 중심가에서 40분 정도 가면 ‘마이센’이라는 곳이 있는데, 부인이 꼭 그곳 접시를 사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하다는 미국의 살림고수 마사스튜어트의 리빙(living) 관련 잡지도 눈여겨 본 적 없던 필자로서는 사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결국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선 ‘유부남 마이센 일행’들은 마이센 접시들을 등에 지고, 손에 들고 대열에 합류했다.
화이트 골드를 아시나요?
대전MBC 특별기획 <화이트 골드, 400년의 여정>은 당시의 그 열혈 접시맨(?)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한편, 그들과 같이 동행하지 않았던 나의 무지함을 부끄럽게 했다. 하얀 것이(도자기) 금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하여 불리는 화이트 골드(whitegold). 방송을 못 본 이들은 백금이라고 여기기 십상일 것이지만, 40여 분의 방송시간이 짧게 느껴졌을 정도로 프로그램은 대전MBC 창사 특별기획답게 알차고 볼거리가 풍부했다. 우리귀에 익숙한 본차이나(bone china)라는 말의 어원(중세 유럽인들이 중국의 도자기를 갖고 싶었지만 그 귀한 고령토를 구할수가 없어서 소뼈 가루를 넣어 불리게 됐다는 그 열등감과 간절한 열망)에 배어있는 유래를 알고 나니 런닝타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방송을 보면서 지난 출장에서 놓쳤던 마이센 접시의 역사와 현재까지의 발전 상황이 제일 인상 깊었다. 아무리 웬만한 주부들이 다 아는 마이센을 모른다고 하지만, 엄마가 애용하시는 티포트 세트 때문에 고가의 덴마크산 로얄코펜하겐 자기는 친숙한 편인데, 마이센보다 60여 년 늦은 후발주자라고 하니 더 새롭게 느껴졌다.
열등과 열정이 빚은 모방, 애증의 400년
수백 년 전, 중세의 유럽 열강들은 중국의 청화자기에 마음을 빼앗겨 수입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 자기 제작 기술을 배우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독일의 뵈트거는 3만 번의 실험 끝에 자기의 성분이 고령토임을 알아냈고, 그것이 원천이 되어 독일 마이센 지역은 유럽 최초의 자기 제작 기술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이 당대에서 원으로 왕조가 교체되자 중국에서의 자기 수입길이 막혀 유럽 열강들은 일본에서 자기를 수입하게 되었고, 청화 일색이었던 중국에 비해 은은한 안료를 사용해 수채화 같은 채색 기법을 활용했던 일본 자기의 이국적임에 또 다른 매력을 느낀 유럽 열강은 자기의 색감을 주는 안료 개발에 공을 들이게 된다. 반면 중국 자기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장시성의 징더전은 오늘날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답게 대량생산이라는 정체성에 갇혀 그 가치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 중이다. 400여 년 전 중국의 청화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모방에 모방을 거듭한 끝에 더 발전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유럽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의 3대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이제 우리는?
총 3부작으로 제작되어 방송되고 있는 <화이트 골드, 400년의여정>의 1편을 정신없이 다 보고 나서야 ‘그럼 우리나라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의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던 일을 국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난다. 분명 후속편에 우리나라를 다루는 부분이 있을 테지만,가만히 집중해서 생각을 해보아도 우리나라의 대표 자기 브랜드가 무언지 도무지 쉽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흔히 백화점 지하 1층 식품코너 옆에 으레 단골손님처럼 자리하고 있는 자기를 비롯한 식기 제품코너의 대부분이 외산인 것만 봐도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전MBC 특별기획 <화이트 골드, 400년의 여정>은 자기라는 일상 속의 제품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한번쯤은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방송될 두 편의 시리즈가 그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을지, 오는 24일과 12월 1일, 두 번의 목요일 밤 11시 10분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채건하 / 대전MBC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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