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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포토라인

포토라인

최근 들어 ‘포토라인'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매일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포토라인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 ‘포토라인(photo line)'이라는 말은 영어에는 없습니다. 포토라인업(photo lineup)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포토라인과는 사뭇 뜻이 다릅니다. 경찰이 범죄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사진을 늘어놓고 목격자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여부를 물어볼 때 사용하는 사진들 또는 그 행위를 포토라인업이라고 하지요. 이야기가 좀 비껴났습니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포토라인은 이와는 다른 뜻입니다.

 

포토라인은 주목 받는 범죄 혐의자나 참고인들이 검찰 또는 경찰에 출두할 때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언론들이 합의해서 만든 선입니다. 즉 수백 명의 기자나 사진기자, 취재진이 문제의 인물에게 몰려들 경우 모두가 원하는 취재를 못하기 때문에 선을 그어놓고 그 바깥에서 취재를 하자는 합의인 것입니다. 근접해서 촬영을 하거나 인터뷰를 할 경우 특정 기자 몇 사람은 특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합의라고 할 수 있지요.


포토라인이 그어져도 경쟁은 계속됩니다. 중요한 인물이 출두할 경우에는 예고된 시간보다 몇 시간씩 빨리 가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해야만 취재 대상이 되는 인물의 미세한 표정까지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취재 전쟁'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대상이 중요하면 할수록 언론사에서는 많은 취재팀을 내보냅니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을 담당하는 기자,이동할 때 촬영하는 기자, 포토라인의 어느 지점에 표시된 곳에서 그 대상자가 멈춰 섰을 때 질문을 하는 기자 등 각각 다른 임무가 주어지지요.


그런데, 모두가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포토라인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거물'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거물'이 자동차에서 내려 정지 시점까지 이동하는 몇초 되지 않는 순간에 ‘특종'을 노리는 기자 한두 명이 접근을 위해 한 발짝을 떼는 순간 수백 명이 동시에 우르르 몰려들면서 포토라인의 벽은 무너지는 거지요. 규칙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지만 당사자가 약속을 무너뜨리는 순간 ‘계약'은 파기된다는 겁니다.

 

"포토라인에 선 이들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정의라는 단어가
 주는 서늘함입니다"

 

수백 명의 취재진이 뒤엉겨서 아수라장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우리는 최근에 목격했습니다. 역사적 아이러니가 이 순간에 발생합니다. ‘거물'이기 때문에 그 거물의 육성은 국민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증언이지만, 포토라인이 무너지는 순간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습니다. 수백 명의 외침이 뒤엉기면서 ‘거물'은 포토라인에서 빠져나가고 어쩌면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포토라인 앞에서 만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어떤 이들은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어떤 이들은 모자를 쓰고, 어떤 이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포토라인 앞에 섰습니다. 그런 점에서 포토라인 앞에 선다는 것은 ‘수치’를 상징합니다.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담담하게 포토라인 앞을 지나는 사람도 있었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과 체념한 표정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포토라인은 어쩌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의가 집결되었을 때 검찰이나 경찰은 참고인이나 피의자를 포토라인 앞에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비공개로 출석 또는 출두하게 했을 때 불어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포토라인은, 그러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란 것입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국가에 심대한 위해를 끼쳤거나 끼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또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포토라인에 서야 할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포토라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형식적 의무선인 셈입니다. 포토라인에 선 이들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정의라는 단어가 주는 서늘함입니다. 권력은 유한하며 한 순간 권력과의 타협으로 얻은 따뜻함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냉정한 진실입니다. 포토라인은 그래서 잊을만하면 우리들에게 극적인 모습으로 역사 앞에서 겸허해질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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