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
“구직. 89세 노인이 일자리 원함. 주당 20시간 이상 일할 수 있음. 청소나 가벼운 정원일, 조립작업, 뭐든지 가능. 추천서 있음. 공수부대 출신. 제가 지루해서 죽지 않게 구해주세요.”
영국의 한 노인이 이런 구직광고를 냈다가 세계 토픽에 올랐습니다. 영국 데번주 페인턴에 사는 조 바틀리라는 89세 노인이 신문에 광고를 낸 것인데, 얼마나 쉬는 것이 지루했으면 이런 광고를 냈을까요. 연금을 받아 편안하게 여생을 즐길 수 있을 터인데, 그에게는 그 생활이 너무도 지루했나 봅니다. 청소나 가벼운 정원일도 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정보까지 주는 걸 보면 정말 일이 하고 싶었던 것 같지요. 노인의 구직광고가 화제가 되면서 지역의 술집과 카페, 마트 등에서 일자리를 제안했다고 하니까 지금쯤은 새 일터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구직광고를 낸 이유도 재미있습니다. 일할 때는 자신이 ‘조’라고 느껴졌지만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지금은 더 이상 자신이 ‘조’라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란 겁니다.
수명은 늘어나서 ‘100세 인생’을 노래하고 있고, 상당수 노인은 ‘젊은 노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건강합니다. 30년 전, 한 세대 전의 나이와 비교하려면 현재의 나이에 70퍼센트를 곱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60세인 사람은 이전과 비교하면 42세에 버금갈 만큼 젊다는 이야기겠지요. 일터에서 ‘강제로’ 밀려나는 것이 억울하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정의 하는데, 2015년 현재 인구의 13퍼센트에 이릅니다. 총 인구가 5,062만 명인데 65세 이상 ‘노인’이 662만 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대전광역시를 기준으로 하면, 대전 인구의 네 배가 넘는 노인들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89세 노인이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다가 화제의 인물이 되었지만, 우리의 경우도 일하고 싶은 노인의 수는 상당수에 이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올해 초에 대전MBC가 개최했던 ‘해외일자리 찾기 박람회’에서도 놀라웠던 장면은 은퇴 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상담 창구에 줄을 서 있던 ‘노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즘의 ‘65세 노인’은 ‘젊은 노인’이라는 모순적인 단어를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기계적인 은퇴 나이에 맞춰 일터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적인 낭비이기도 합니다.
"노인들이 품격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의 의무입니다"
‘젊은 사람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데 빨리빨리 자리를 비켜줘야지’라고 질색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노인들이 하는 일과 젊은이들이 하는 일이 겹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50대가 넘는 이들인데, 이 가운데 남성 노인도 상당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젊은 사람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젊은이들은 전문적인 일을 배울 수 있는 일터에서 일을 배워야 하는데, 단순직 일자리에서 바코드를 읽는 일을 한다니 말입니다.
그나마 일터를 찾지 못하는 여성 ‘노인’들은 최
노인 인구 660만 명, 이 수치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노인문제를 치료와 보호, 요양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65세 노인은 ‘젊은 노인’입니다. 치료와 보호, 요양까지 가기에 30~40년간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채워주는 것은 교육 프로그램과 일자리입니다. 언젠가 대전시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대전MBC가 운영하는 경제부동산 과정에 참고가 될까 해서 시장조사차원에서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수업을 들었는데, 대부분 수강생들이 50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만큼 고령 학습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관심 영역의 공부를 은퇴 후에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사실, 일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은퇴 후 ‘노인 생활’은 죽음을 기다리는 일에 다름 아니니까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