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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한 줄

한 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의 한 구절입니다. 겨울이 되면 더더욱 자주 인용이 되는, 이제는 ‘현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시구이죠. 한 줄의 글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을 보여주는 문장을 담고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도 그 한 문장을 들으면 전율이 오는 말입니다. 살다보면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책에서 때로는 강연에서 때로는 방송에서 이런 말들을 접하게 됩니다. 30년 동안 방송 분야에서 일해 온 저는 방송의 힘을 믿습니다. 매일 일상을 전하는 것 같지만 뉴스 보도는 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6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방송은 젊은 미군들의 바디백(body bag, 시체운반용 부대)을 보여주면서 반전 여론을 들끓게 했고 결국 미국은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베트남에 패하고 물러나야 했습니다. 방송은 신문 같은 인쇄매체와는 달리 말과 함께 사람의 표정이나 배경까지 함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매체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는 신문의 문장은 담담하게 사실만을 전달하지만 방송에서는 실제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표정과 몸동작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훨씬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송의 이 같은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케네디와 닉슨을 꼽기도 합니다. 1960년 9월26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텔레비전 방송 토론에서 케네디는 매력적으로 그을린 43세의 남성을 거침없이 표현했습니다. 매력적인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닉슨은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토론 직전에 무릎 수술을 한데다 식중독에서 겨우 회복하는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안색이 좋지 않았겠지요. 닉슨은당시 47세로 케네디와 4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큰 형님과 동생처럼 보일 정도로 나이차이가 벌어져 보였다고 합니다. ‘하룻밤에 대통령이 바뀐 선거’라고 방송 역사, 선거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뜻밖에 좋은 프로그램을 보면 플리마켓에서 국보급 물건을 우연히 손에 넣는 것처럼 큰 기쁨을 줍니다. 이 같은 기쁨은 대부분 경우에 ‘한 줄’에서 옵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강한 감동을 주는 한 문장을 만날 때 전신이 저릿해집니다. 때로는 인터뷰의 절박한 한 마디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쁨은 어떨 때 드라마에서 오기도 합니다. 출연자의 한 마디는 인생의 핵심을 찌르는 한 마디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심야방송에서 일본의 ‘혼밥족’ 사나이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나이의 말에서도 가끔 ‘한 줄’의 묘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좋은 작가가 그 뒤에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글이 좋으면 감동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저는 방송을 위해 일하는 후배, 특히 그의 말이 방송에 나타나는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 ‘한 줄’에 목숨을 걸라고 얘기합니다. 물론 목숨을 걸 만큼 정성을 쏟아도 ‘연탄재’나 ‘게티스버그’ 같은 명문은 우리 일생에 못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내가 방송에 올리는 말이 수많은 시청자의 귀에 들어갈 것이며 내 한 문장이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분 30초 기사 하나 쓰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릅니다.


시청자 여러분들은 그저 지나가면서 방송을 흘려듣게 될지 모르지만 방송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한 줄을 위해 진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났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자산인 전파를 이용하는 만큼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한 줄’의 힘은 거대하고 때로는 그 ‘한 줄’ 때문에 세상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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