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웃사이더의
반란
모두가 틀렸습니다. 줄곧 힐러리의 승리를 예측하던 주요 여론기관의 여론조사도 틀렸고, 정치평론가들도 틀렸고, 힐러리 쪽 대선캠프도 틀렸습니다. 이변이 없다던 미국 대선은 ‘아웃사이더의 반란’으로 전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충격’이란 단어도 의미 전달에는 부족할 정도로 세계는 경악했습니다. 트럼프의 승리를 확신하던 이는 어쩌면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본인이었습니다. 모든 여론조사가 힐러리의 당선을 예측하던 순간에도 그는 “내가 이긴다”고 장담했으니까요. 트럼프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날(11월 9일) 오후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유가는 급등하고 달러 가치는 급락했습니다. ‘트럼피즘(Trumpism)’의 불확실성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국민은 안정된 프로 정치인보다는 변화를 몰고 올 아웃사이더를 선택했습니다. ‘여성대통령’ 대 ‘아웃사이더’의 경쟁에서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미국 선거는 기성 정치에 신물이 난 미국 국민들의 분노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여론조사기관들은 모두 힐러리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오차 범위 내의 접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했지만 힐러리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유력 신문들은 일찌감치 힐러리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트럼프의 과거 ‘비리’를 폭로했습니다. 여성 편력에다 인종 혐오 발언, 여성 비하 발언 등을 보도하면서 그의 ‘저급함’을 확산시켰습니다. 막판에는 부인 멜라니아가 모델 시절 촬영한 누드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트럼프를 끌어 내렸습니다 (그런 멜라니아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변화’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로 퇴임을 할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백인 남성들이 가진 불만은 해소시키지 못했습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불리는 오하이오와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제조업의 쇠퇴와 함께 경제가 침체되었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백인 남성들의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성들은 권위가 떨어졌고, 자연스레 여성 대통령에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미국인의 자존심 회복을 역설했던 것도 주효했습니다. ‘힐러리 피로감’도 한몫을 했습니다. 힐러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 정치에서 주요 한 부 분 을 차 지 하 면 서 미 국 기득권(Establishment, 이스태블리쉬먼트)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8년간의 영부인에 8년간의 상원의원, 또 4년간의 국무부 장관이라는 화려한 경력은 왕정이 아닌 미국에서 사실상의 ‘정치 귀족’이었습니다. 남편인 빌 클린턴은 성 추문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한 사람입니다. 미국의 상원의원은 임기가 2년인 하원의원과는 달리 임기가 무려 6년입니다. 정치의 연속성을 도모하고 베테랑 정치인의 자산을 활용한다는 효과가있는 상원제도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요. 인구나 영토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주에 두 명의 상원의원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0개 주 100명의 상원의원은 사실상 미국의 정치 귀족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국무장관은 또 어떻습니까. 미국의 대통령을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비유하는데, 미국의 국무장관은 권력 구조상 ‘넘버 2’라고 할 수 있겠지요. 힐러리가 영부인으로 백악관에 들어온 것이 1993년, 23년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인물에게 기대할 ‘변화’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는 기성 정치에 신물이 난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
트럼프를 묘사하는 수식어는 많습니다. 아웃사이더, 매브릭(maverick)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기성 정치에 신물이 난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근사하게 말하고,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기존의 후보들과는 달리 그는 거리의 보통 사람들처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샀습니다. 인종비하, 여성 폄훼 발언이 이어졌지만 뒤집어보면 보통의 사람들도 다 그런 것 아니냐는 거지요. “나의 막말은 말에 불과했지만 빌 클린턴은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트럼프의 말은 힐러리 캠프를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선거를 ‘비호감’의 대결이라고 표현한 언론도 있습니다. 선거 막판에 나온 비호감도 조사에서는 힐러리가 57퍼센트, 트럼프가 61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당선인’ 트럼프는 대통령답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수락연설에서는 그랬습니다. 힐러리에게 축하를 보내고, 자신을 도와준 가족과 캠프 주요 인사들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저의 눈에 띄었던 장면은 자신의 경호원들을 거론하며 감사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음지에서 일하는 이들을 신경 썼다는 것은 거칠게 보이는 트럼프가 나름대로 ‘약자’들을 챙기는 인물이기도 한다는 반증이겠지요. 최고령 대통령, 최고 갑부 대통령(재산11조원), 최초의 아웃사이더 대통령(정치 경력 전무)이라는 기록을 세운 도널드 트럼프,그가 ‘세계의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번영은 물론 세계의 번영을 가지고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여담이지만 미국은 참으로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퍼스트레이디가 될 멜라니아는 플레이보이 잡지 모델 출신의 최초 퍼스트레이디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