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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건강한 권력 오만한 권력

건강한 권력

오만한 권력

 

권력이 무상함을 느끼는 것은 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 아침에 눈만 뜨면 새로운 충격을 느끼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권력의 유한함’을 최소한 4~5년에 한 번씩 목격하면서도 유사한 사태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꼭대기에 있을때 ‘자신’을 잃어버리게 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게 합니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전국을 공황 상태에 빠지게 한 그녀가 옷 제작소(공식 의상실처럼 보이지 않아서 적당한 표현을 찾기 힘듭니다)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최고 권력기관에 일하는 공무원 두 명을 대동한 그녀가 휴대전화를 건네는 장면입니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손을 옆으로 내미는데, 그 공무원이 얼른 그 휴대전화를 받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함축한 장면이었습니다. 권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잘못된) 권력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으며, 그 끝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었다는 겁니다. 권력은 사람을 안하무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건을 건넬 때는 그 물건을 받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상대편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겁니다. ‘무시(無視)’는 한자의 뜻대로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에서 왔지만 사전적 뜻은 ‘사람을 업신여겨 깔본다’는 것입니다. 권력자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물건을 건넸지만 공무원은 얼른 그 물건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 권력자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권력자와 권력자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일지도 모릅니다. 권력자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물건을 건넸고 권력자 아래 있는 사람은 잽싸게 건네받았습니다.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지요.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다는 뜻입니다. 좀 꼬아서 이야기하면 권력자는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고 권력자 밑에 있는 사람은 계속 주시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휴대전화를 건네는 장면은, 그러니까 오만한 권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가 막힌 한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장면을 목격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젊었던 시절 잘나가는 현장 피디였는데, 누구라 이름을 대면 알만한 가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대화 도중에 가수가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폈더니 누군가 잽싸게 담배를 끼워주었답니다. 매니저였습니다. 몇 모금 담배를 빨아들이고 가수가 손을 내리려는 순간 어느 사이 매니저가 재떨이를 그의 손 아래 갖다 댔습니다. 이제는 그가 재를 떠는 순간이었다는겁니다. 가수와 매니저,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랫동안 그렇게 형성이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쳐다보지 않아도 서비스를 받는 사람과 누군가를 계속 지켜보고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관계 말입니다.

 

“권력은 유한하다”

 

그런데 이런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관계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권력이란 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는 그 권력이 영원할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그 권력은 끝이 납니다. 권력이 떨어지는 순간 권력자는 보통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한 기관장은 사람을 만나 인사를 받을 때 반드시 원칙 하나를 지킨다고 합니다. 상대가 절을 할 때 머리 숙이는 각도를 맞춘다고 말이지요. 상대가 10도를 굽히면 자신도 10도를 굽히고 30도를 굽히면 자신도 그 높이에 맞춘다고 합니다. 상징적인 이야기지만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되겠지요. 이런 정도의 각오를 가진 사람이면 휴대전화를 건넬 때 상대편의 눈을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그 방향조차 1도의 회전도 없는 ‘스스로 권력자’ 같은 행세는 하지 않겠지요. 그는 이런 태도를 ‘건강한 권력’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최근 사태를 보면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master-slave dialectic)’을 떠올립니다. 주인이 주인이기 위해서는 노예라는 존재가 필요하지만 노예는 예속에서 해방되고 싶습니다. 노예가 예속에서 해방되기를 꿈꾸는 순간 더 이상 주인이라는 존재는 주인이될 수 없습니다. 해방을 꿈꾸면서 도망을 가거나 구조를 혁파하려고 하면 주인은 오히
려 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예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주인과 노예가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해 주어야만 쌍방이 모두 ‘해방’되는 구조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더 이상 ‘주인’이나 ‘노예’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시대착오적으로 살아가는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최근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 권력자는 공식 권력자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남긴 교훈이 있다면 권력은 유한하다는 것과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40년에 걸친 그들의 ‘유사 권력’에 종지부가 찍힐 것을 기대해 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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