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유독 파란색이 눈에 띈다. 신비롭고, 영롱한 색. 그의 그림에는 황금보다 귀한 안료, 울트라마린이 사용되었다. 산뜻한 푸른 꽃무늬가 있어 불리는 청화(靑花)자기. 17세기 유럽은 하얀 살결에 푸른 꽃이 내려앉은 중국 청화자기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리고 인류 최고의 하이테크 상품인 청화자기를 만들고자 열망했다.
동양의 하이테크,
유럽을 매혹하다
2016년 대전MBC의 창사 특별기획은 도자기를 둘러싼 동서양의 하이테크 전쟁을 다룬 <화이트골드, 400년의 여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 일본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까지, 도자기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주요국의 현지 촬영을 통해 생생한 영상을 준비하여 그 방송을 앞에 두고 있다.
중국 도자기의 발명은 유럽보다 1,500년이나 앞섰다. 도자기(china, 차이나)라는 이름도 여기서 왔다. 인류 최초의 자기 제조 기술을 보유했던 중국. 중국 도자기의 최첨단 제품이었던 청화자기는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페르시아에서 산화코발트를 수입하여 하이테크 상품을 만들어 냈고, 이후 중국은 유약 개발과 가마, 제작 분업화 등으로 독창적인 기술을 습득한 것이다. 대항해시대를 맞아 청화자기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큰 인기를 얻었다. 16~18세기까지 총 3억 점의 도자기가 유럽에 전해져 판매되었다. 이때 세계에서 생산하는 백은(white gold) 총량의 1/3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왔을 정도다.
유럽 도자기의 성지인 마이센은 유럽 도자기 역사의 출발점이다. 아우구스트 1세는 중국의 자기와 같은 도자기를 가지고자 열망했다. 연금술사인 뵈트거와 과학자 치른하우스를 성에 감금하고 실험실을 만들어 도자기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이들은 20년간 3만 번 이상의 실험 끝에 마침내 백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때가 1710년이었다. 유럽에서 재현된 청화백자는 마이센의 걸작 ‘쯔비벨무스터’의 시조가 된다. 하지만 초기 마이센은 동양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방하기 급급했다. 당시 창조적 영감의 대부분을 동양에서 얻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역시 열렬한 중국 자기 애호가였다. 프랑스 역시 명나라 청화백자를 모방하기 위해 도자기 제조에 공을 들였다. 루이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은 도자제작소를 세브르로 옮기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뒤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양식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불과 1년 만에 마이센에 견줄 만한 수준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세브르 도공은 작고 섬세하고 우아한 곡선을 중시하는 로코코 문양의 양식을 도입했다.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덴마크 왕실은 1775년 국책사업으로 도자기 제조를 선정하고 왕실이 직접 관할하는 본격적인 도자기 공장을 세웠다. 당시는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도자기 제조 기법을 서로 훔쳐냈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도자기 생산에 한창인 시기였다. 로열 코펜하겐은 도자기를 왕실이나 궁정 고위직을 위한 선물, 기념품 등의 용도로 제작하였다.
화이트골드, 혁신과 창조의
정신을 찾아가는 여정
2차 하이테크 전쟁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 명•청 교체기의 중국은 바닷길을 막는 쇄국정책을 펼쳤고, 중국에서 도자기의 수입이 끊기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국 자기의 대용품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일본 아리타 자기를 선택했다. 새로운 변화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일본 자기가 중국 자기를 능가하게 되었고, 187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 전역에 일본 유행 붐 ‘자포니즘’이 일게 된다. 첫 수출 뒤 70년 동안 약 700만 개의 아리타야키가이마리 항구를 통해 세계 각지로 팔려 나갔다. 유백색 바탕에 여백을 충분히 남기면서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을 장식한 도자기. 일본에서 처음으로 완성한 아카에 기법으로 다양한 채색이 가능하게 되었고, 중국 청화자기와 다른 신선한 매력은 다시 온 유럽을 새로운 동양열풍으로 휩싸이게 한다. 유럽을 휩쓴 일본 도자기의 원류는 조선이었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 이삼평은 도자기의 신, 즉 도조로 추앙받고 있다. 계룡산 주변 가마에서 도자기를 빚던 계룡 도공 이삼평은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자기기술을 가르쳐 일본 자기의 도조가 되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유럽으로 이어진 도자 기술은 유럽에서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생산 체제를 도자기에 도입하고, 혁신을 통해 도자 기술을 다시 발전시킨 것은 유럽이었다. 본차이나는 소뼈를 갈아 원료로 사용하는 영국식 도자기다. 토마스 프라이는 동물의 뼛가루와 점토를 섞어 도자기를 만드는 본차이나 기법을 1748년 처음으로 발명해 냈고, 1790년 사이어 스포드가 오랜 노력 끝에 마침내 본차이나의 상용화에 성공하였다. 이후 많은 도자기 회사에서 본차이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웨지우드는 도자기에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인쇄한 전사지를 사용하는 전사법으로 공정을 단순화, 기계화하였다. 도자기에 있어서의 산업화를 이룬 웨지우드는 도자기를 귀족문화에서 서민문화로 그 소비층을 넓혀나갔다. 프랑스는 동양의 장인문화를 서양식으로 정비했다. 현재 세브르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은 국가가 인정하는 장인으로 아르티장 나시오날이다. 200여 명의 직원 중 도예 장인은 120명. 프랑스의 무형문화재 전수 제도는 세브르 말고 없다. 이곳의 장인들은 20대에 들어와서 60세까지 일한다. 프랑스 대통령은 외국 순방 때마다 세브르 자기를 가져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은 이 하이테크 전쟁에서 철저하게 소외 되었다.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혁신하지 못한 기술은 그대로 사장되고 말았다. 현대 한국의 도자기는 어떤 전략으로 하이테크 전쟁에 다시 뛰어들 수 있을까? 세계인들은 한국 도자기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까 ? 대전MBC 창사 52주년 특별기획 <화이트골드,400년의 여정>은 우리 안에 숨어있는 혁신과 창조의 정신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기획 : 이재우 구성 : 이윤숙 연출 : 김종훈
방송 : 1부 ‘모방, 창조의 여명’ 11. 17. (목) 밤 11시 10분
2부 ‘장인의 열정이 빚은 세계’ 11. 24. (목) 밤 11시 10분
3부 ‘전통, 혁신을 더한 이름’ 12. 1. (목) 밤 11시 10분
이재우 / 편성제작국 제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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