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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일요음악여행> 가을날의 클래식을 좋아하세요?

 

"무너진 터널, 어둡고 절망이 가득한 그곳에서 주인공은 유일하게 수신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그리고 삶의 의지를 다시 다잡는다. 기괴하게 붕괴한 터널 안으로 퍼지는 클래식 음악은 지독히도 아름답다. 극한의 생존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도록 주인공을 위로하던 클래식. 왜 하필 클래식이었을까?(영화 <터널> 중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짧은 가을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클래식을 추천한다. 특히 현악기 연주가 제격이다. 믿고 듣는 이영주 DJ가 권하는 가을 감상법이다. 클래식과 뉴에이지, 퓨전 음악까지, 일요일 아침을 평화롭게 수놓는 <일요음악여행>(매주 일요일 오전7~9시). 서두를 것 없는 휴일 아침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다디단 늦잠을 자는 호사는 <일요음악여행> 청취자만 아는 휴일 꿀팁이다. LTE 속도로 치열한 일주일을보낸 나에게 주는 휴식, 혹은 위로랄까.

 

“일주일에 두 시간이지만 편하게 감상하면서 클래식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클래식은 연주자에 따라서 느낌이나 곡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선곡하기 전에 꼭 먼저 들어봐요. 전문 지식이 없어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인데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쉽게 다가오지 못해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선곡과 진행에신경 쓰죠.”

 

이영주 DJ는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은 자주 접할 수 없는 환경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TV에서 쏟아지는 가요나 길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그 수많은 음악 장르 중 클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태교 음악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브람스와 모차르트도 아이들이 옹알이를 시작하는 순간 동요 CD로 바뀐다.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했던 아이들은 강제로 클래식과 이별을 겪는다. 그리고 빠르게 자란 아이는 어느 날 문득 회귀 본능처럼 클래식 방송에 채널을 맞춘다. 눈을 뜨면 신기능이 탑재돼 쏟아지는 스마트폰처럼 스마트한 기능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기에 클래식은 더 소중하다. 영화<피아니스트>에서 독일 장교 앞에서 슈필만이 연주하는 쇼핑 발라드 1번이 지독히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당신도 클래식이 주는 깊은 위로를 받을 자격이 있다.

 

클래식 더하기,
강신태 피아니스트의 ‘안녕, 클래식’

 

딱히 사연을 소개하는 것도, 전화나 문자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지인을 통해 들어오 <일요음악여행>에 대한 청취자의 애정은 작가나 진행자 모두에게 힘이 된다. 오로지 청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라디오의 특성상 멘트 하나에도 감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신경 썼던 그들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무심히 ‘잘 듣고 있다’는 한 마디가 커튼콜을 받은 연주자처럼 기쁘다. 클래식이 좋아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이 소중하다는 이영주 DJ도, 클래식을 잘 몰라 공부하며 글을 쓴다는 김민지 작가도 조용한 성정의 청취자 격려는 팬레터와 동급이라 입을 모은다.


“김민지 작가는 라디오 작가로 시작한 경력 때문인지 라디오의 습성을 잘 알아요. 청취자를 취향 저격하는 대화법을 알아요. 이런 작가와 일하는 건 행운이죠. (웃음) 그리고 2부를 함께 진행하는 강신태 피아니스트의 ‘안녕, 클래식’ 코너도 채널 고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강신태 피아니스트는 이미 클래식 해설사로 오랫동안 무대에서 사랑받았던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의 해설로 클래식 거장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해는 넓어지고 깊어진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작품을 엮는 솜씨나 해박한 전문지식은 지루할 수 있는 클래식을 흥미롭게 유도한다. 지난 시간 장미를 주제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남국의 장미’를 소개하며 들려줬던 에피소드가 다음 시간을 기대하게 하듯, 묘한 매력을 지닌 그의 이야기는 클래식과 청취자의 간극을 간단없이 줄여 버린다. 겨울 초입까지 꽃으로 꾸민 클래식 이야기를 들고 오겠다던 강신태 피아니스트의 ‘안녕, 클래식’ 덕분에 때 아닌 꽃놀이도 하게 됐다. 그가 소개하듯 약처럼 쓰고 샴페인처럼 달콤한 클래식을 들으며 삶이 힘들 땐 고전에서 답을 찾아도 좋겠다. 그러다 보면 잔잔한 선율 끝에 클라이맥스가 터지듯 막힌 터널 끝엔 빛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그러니 클래식과 함께하는 가을은 분명 어제와 다른 오늘일 것이다. 가을날의 클래식, 혹은 겨울이어도 외롭지 않겠다.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