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빗속에서 방방 뛸 줄 누가 알았겠어
요. 아직도 가슴이 뛰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수 2통이 필요할 정도로 방방 뛰었다는 한 주부의 콘서트 소감이다.
가을비와 함께 시작된 콘서트
지난 7일 한빛콘서트가 열렸다. 가을비가 내렸다. 샘머리공원에 마련된 야외 콘서트 무대는 제법 굵은 가을비에 이미 젖은 지 오래다. 그러나 콘서트 시작 전부터 우의를 입은 청중들은 빗줄기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같은 색 우의를 입고 가수의 출연을 기다리는 청중들은 90년대를 풍미했던 어느 아이돌 팬클럽 같았다. 순간 무대가 암전되고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속에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영상이 나타났다. 오프닝은 박예음양의 ‘TOMORROW’. 어린이와 학생의 경계에 있는 작은체구의 아이. 세상의 모든 투명한 것으로 만든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TOMORROW는 가을비와 몹시 잘 어울렸다.
“근사한 밤이죠?”
이장희. 번안곡이 포크송의 주류를 이룰 때 그는 홀로 곡을 쓰고 가사를 썼다. 암울했던 70년, 당시 콧수염을 기르고 가죽 재킷에 오토바이를 탔던 자유로운 영혼이 바로 이장희였다. 꽃 같은 가사로 감성을 건드리던 포크송 세계에 ‘마시자, 마셔 버리자’라며 우울한 청춘들에게 돌직구를 날리던 천재 뮤지션이 세월을 뛰어넘어 눈앞에 기타를 들고 서 있다. 언뜻 봐도 그 시절 이장희 팬이었을 나이 먹은 소녀들이 환호한다. 빗줄기 속에 기타를 메고 “근사한 밤이죠?”라고 씩~웃자 ‘소녀’들은 한 옥타브를 올려 열성적으로 답한다. ‘자정이 훨씬 넘었네’, ‘불 꺼진 창’,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을 간간이 토크와 곁들여 부르던 이장희 앞에 흥을 주체하지 못한 소녀 팬 두엇이 의자에서 일어나 가락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디스코와 막춤,그 어딘가를 헤매는 춤사위는 자유롭고 유쾌해 보인다. 마치 우울하고도 발랄한 이장희의 노래처럼. 그 가수에 그 팬이랄까. 무려 7곡을 부르고 이장희는 연호하는 팬을 뒤로하고 총총히 사라졌다.
“자, 소리 질러~
빗줄기가 더 거세지며 등장한 소찬휘. 명불허전 라이브의 여제인 그녀의 등장에 이번엔 아저씨 팬들이 난리가 났다. 김경희(본명)! 김경희!. 본인만 싫어하는 본명을 팬들이 열정적으로 부른다. 화답하듯 ‘TEARS’와 ‘현명한 선택’을 원키로 거침없이 부른 김경희 덕분에 객석은 흥분의 도가니다. 마법처럼 그녀의 노래엔 따라 부르게 하는 힘이 있다. 온몸으로 쏟아지는 가을 폭우도 더 이상 그들의 흥을 막을 수 없던 그때, 김장훈이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로 나왔다. 비는 아예 열대 스콜처럼 퍼붓고, 김장훈은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무대에서 겅중 뛰어내린다. 순식간에 객석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맨 몸으로 맞으며. 코앞에서 ‘난 남자다’를 부르는 상남자, 김장훈 때문에 관객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너무 휴대폰을 들이미는 게 아닌가 싶은 팬을 향해서도 ‘괜찮아요. 초상권 없어요. 막 찍어도 돼요.’라며 대인군자 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제 우의를 입었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었다. 우의에 딸린모자를 이미 벗어젖히고 잔디밭이 트램펄린인 양 방방 뛰는 관객들은 제어 불능. 그 많은 관객 중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이제 콘서트의 마지막, 현철의 무대만 남았다. 가을비와 포크송, 댄스, 팝, 록발라드, 그리고 트로트.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르고 기름까지 붓고 간 김장훈의 여운을 현철의 구성진‘뒤비지’ 창법이 다독거린다. 가슴을 건드리는 트로트 특유의 감성은 비 오는 가을밤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손에 꼽기도 힘든 그의 대표곡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받으며 관객들은 모든 순서가 끝나자 질서정연하게 콘서트장을 나섰다.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 2016년 한빛 콘서트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안시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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