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EO의창

행사 때문에 연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연설을 사전에 글로 써서 읽는 편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시간제한 때문입니다. 즉석에서 하다보면 아무래도 말이 길어져서 정해진 시간을 넘기게 됩니다. 연설이란 것이 원래 ‘본편’보다 재미없는 경우가 많기에 시간에 맞춰 주는 것이 좋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실수’ 가능성입니다. 즉흥적으로 말을 하다보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부적절한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최근에 그런 경험을 할 뻔 했습니다.

 

대전MBC가 주최 ・ 주관한 장애인 음악회의 마무리 부분에서 짧은 인사말을 할 때였습니다. “저희 대전MBC는 내년에도 장애인과…, 장애인과 … 함께하는 이런 행사를 계속 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런 내용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과’라는 말 다음에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것도 적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장애인과 정상인?’, 더욱 부적절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장애인’,‘장애우’, 이런 식으로 말을 할 때 장애를 갖지 않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없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 또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이런 행복한 행사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했으면 될 일입니다. 그래서 연설문은 미리 써서 사전에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요.

 

"말에는 역사가 담겨있고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표현과 관련한 문제가 이것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사 때문에 ‘친(親)’자가 들어가는 것이 안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나 ‘친척’의 경우처럼 좋은 어감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친일’이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친일파’가 되면 모욕적인 ‘욕설’이 되어버리지요. ‘친미’도 그렇게 좋은 어감을 가진 말은 아닙니다. ‘친’자가 들어가면 원래는 호감을 가진다는 뜻인데, ‘친일’이나 ‘친미’처럼 뜻이 ‘확장’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어감을 배제하기 위해 ‘지(知)’자를 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한파’나 ‘지미파’의 경우처럼 특정 나라를 ‘잘 안다’는 표현을 쓰면, 이때는 경멸적인 어감이 빠지게 되지요. ‘친밀하다’는 뜻은 빠지지만 실제로는 호감을 갖는 인물이란 원래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도 마찬가지라고 하지요. ‘민주주의’라고 하면 되는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자유’를 그만큼 강조한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북한과 대치하는한국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겁니다. ‘자유민주질서’나 ‘자유민주체제’라는 말의 어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만큼 ‘말’에는 역사가 담겨있고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글날에는 ‘스마트 시대’의 표현들이 언론에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화석선배(취업 때문에 졸업을 미루거나 취업이 안 돼 학교에 머무르는 선배), 사망년(여러 가지 스펙을 쌓느라 고통 받는 대학교 3학년) 등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오다)나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등 단어의 첫 음을 모아 만든 줄인 말, 또 핵노잼(지극히 재미가 없다), 낫닝겐(인간이 아니다)처럼 외국어와 합친 말을 줄인 표현도 있습니다. 줄임말은 문자를 쉽게 보낼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효율성을 위해글자 수를 줄이다보니 생겨난 현상이지만 세대 간 소통을 단절시킨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말은 때로는 ‘설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돼지 사건’이었지요. 충분한 시간을 거쳐 숙고되지 않은 표현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따라서 분란을 일으키게 된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고 이야기되는 사건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도구이지만 때로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하고 더 격한 경우에는 생명까지 빼앗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 그냥 ‘말’이 아닌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나 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CEO의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ABU 단상  (0) 2016.10.28
바람은 알고 있지  (0) 2016.10.20
노벨상과 복종문화  (0) 2016.10.06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 대전MBC 창사 52주년 기념사  (0) 2016.09.29
김영란법  (0) 201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