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EO의창

김영란법

김영란법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것이 ‘김영란법’ 이야기입니다. “단군 이래 대한민국을 가장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법”이라거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김영란법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등의 평가까지 나옵니다. 3-5-10으로 압축되는 이 법의 요지는 이해당사자가 만날 경우, 식사는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 때는 10만 원까지의 상한선 안에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이 확정 되기 전에는 한우농가와 화훼농가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물 상한선을 더 높여야 한
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 원래대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70퍼센트가 찬성하는 법안에 공공연하게 수정 제안을 할 만큼 ‘간 큰’ 정치인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기득권의 부정부패를일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던 것입니다. 김영란법의 여파는 컸습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의 모든 주요 홍보 행사를 9월 28일 이전에 치렀으며, 9월 28일 이후로 잡혀 있었던 행사는 취소됐다고 말했습니다. 식사 한 번 하는데 10만 원 이상이 들고, 술 한잔 곁들이면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행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부 취소하지 못한 약속은 상대방으로부터 취소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업 쪽에서 언론사 간부에게 먼저 취소하기가 어려워 상대방이 취소해주기를 기다린다는 겁니다.

 

 

9월 28일 이후 달라질 풍속도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더치페이’일 것입니다. 자기가 먹은 밥값이나 본인 ‘골프 게임’ 비용은 자기가 지불하게 된다는 거지요. 지극히 당연한 이 관행이 우리나라에서는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김영란법’이 강제로 ‘더치페이’의 풍습을 만들 거란 분석입니다. 지금까지 홍보가 필요했던 대기업에서는 국회나 공무원, 언론을 상대로 관행적으로 ‘접대’를 해왔습니다. 일각에서는 ‘홍보’보다 ‘방보’ 목적이 더 강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방보’라는 것은 기업에 대한 좋지 않은 정책이나 기사를 막는다는 의미의 ‘슬랭’입니다. 장기적으로 국회, 고위 공무원, 언론을 접대하는 홍보실 기능은 기업으로서는 ‘회사 안보’와 직결되었기에 기업의 주요 업무로 여겨졌습니다. ‘접대’할 일이 줄어들 터이니 홍보실이 크게 축소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업소가 아니라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는 ‘미국식 접대 문화’가 생길 거란 관측도 나옵니다.

 

"대한민국에 ‘거품’이 빠지
기 시작했다는 거지요 ”
 

 

9월 28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당분간 ‘유흥업소’와 고급 식당가는 냉랭하게 얼어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고급 한정식 집은 벌써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1인당 10만 원이 넘는 식사의 대상은 앞서 언급한 국회, 고위공무원,언론사 직원들이 주로 접대를 받던 곳이었는데 9.28 이후에는 장사가 될 리 없는 상황이니 이해가 됩니다. 고급 일식당에 1인당 29,000원짜리 ‘김영란 정식’이 등장했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외식 업계의 ‘피해액’은 4조5천억 원으로 추산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에는 주고받던 선물의 ‘크기’가 벌써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20~30만 원짜리 한우세트 등은 자취를 감추고 3~5만 원짜리 견과류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거지요. 이전에 접대를 하던 쪽이나 접대를 받던쪽에서 가장 조심하는 것은 ‘1호’가 되는 겁니다. 김영란법 적용대상 ‘1호’는 역사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률 적용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 청탁을 하려다가 금품 등을 주거나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1호’로서 전국 주요 신문의 1면에 크게 소개될 것이며, 한국의 역사에도 주요 판례로 남게 될 것입니다. 대상자 본인으로서는 치욕이며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경계하고 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해마다 생일날이면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던 사립대학의 교수도 올해 12월 자신의 생일에는 이 행사를 취소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합니다.

 

이 법에 이름을 부여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이 엄청난 법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것에 부담을 느끼며 자신의 이름을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긴 이름 대신 ‘김영란법’으로 부릅니다. 핵심은 한국 사회를 더 투명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금수저들끼리의 ‘특권 주고받기’를 수도 없이 목격한 국민들에게 이 법은 정의를 되찾아주는 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권력의 보호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수억 원을 주고 주식을 사게 해 백억 원이 넘는 이득을 냈다거나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주면서 정당하게 받아야 할 죗값을 깎아주는 사례를 보아온 국민들로서는 이런 ‘극약처방’만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9월28일은 이제 단 1주일 남았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CEO의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벨상과 복종문화  (0) 2016.10.06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 대전MBC 창사 52주년 기념사  (0) 2016.09.29
그녀  (0) 2016.09.12
마른 치약  (0) 2016.09.08
루틴의 힘  (0) 201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