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얼마 전 요르단을 여행하다가 후배 S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S는 중동 취재를 하다가 알게 된 여성인데, 현지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고 또 볼일이 바빠서 연락을 망설이다가 떠나는 날 오후에야 전화를 했습니다. 만날 형편이 되면 얼굴을 보면서 안부를 확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떠날 작정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자 그녀는 반색을 하며 호텔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내 생각을 했다는 얘기까지 덧붙이며 자기 집으로 와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의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습니다.
새로 이사한 그녀의 집은 복층의 아파트였습니다. 가구 도매업을 하는 가정답게 집안 곳곳에 멋진 가구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번 그녀의 집보다 훨씬 큰 저택에서 그녀의 모습은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이슬람국가(IS)의 테러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통에 여행업계가 비상이었지만 다행히 가구점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다음날 새벽 4시였기 때문에 거의 12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녀로부터 사는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시간이었지요.
‘저택’을 장만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했으니 보람을 느끼겠다, 한국에는 얼마나 자주 들어가느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녀로부터 ‘성공 비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가이드를 하는 일도 많았고 때로는 위험한 곳을 들락거리기도 했지만 일을하는 데 중요한 원칙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절대 공짜로 얻어먹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식적인 팁은 받지만 자기가 먹은 음식값은 자기가 따로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오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부 가이드들은 예정에 없는 일정을 만들어 여행객들에게 ‘보너스’를 주는 것처럼 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부작용을 낼 수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정해진 일정을 보고 여행 신청을 한 것이기 때문에 즉석에서 일정을 추가할 경우 뜻밖의 사고가 나면 책임은 가이드에게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셋째, 이유 없이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떤 여행자들은 여행이 끝날 무렵 현지 화폐 남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자신은 이것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유 없는 돈을 받으면 사람이 구차해 진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녀
로부터 ‘성공 비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그녀가 한 말의 핵심은 프로정신이었습니다. 음식 값을 자기가 계산하고, 원래 일정을 충분히 소화하고, 여행객들에게 공짜 돈을 받지 않는다는 건 여행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 같아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행을 마치는 사람들이 주는 ‘잔돈’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푼돈에 무너지면 가이드의 자존심도 무너지게될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나니 어느새 밤 11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붙이라며 자리를 깔아주었습니다. 새벽 4시 비행기이니 택시를 불러주면 일찌감치 공항으로 가겠다고 해도 그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1시 반경에 출발하면 된다며 거의 반강제로 자리에 눕혔습니다. 여행에 피곤한 몸이라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1시가 되자 그녀가 깨웠습니다. 그리고 1회용 칫솔과 치약을 주더니 양치질을 하라고 하고 양치질을 끝내니 물 한잔을 주며 마시라고 했습니다. 비타민 등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다며 대추야자 한 박스를 건네주며 꼭 공항에서 먹으라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왜 가이드로, 또 여행사 대표로 성공했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그녀에게 아이들 용돈으로 주라고 돈을 좀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밀거니 당기거니 했지만 그녀는 결국 그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보내온 문자를 펼쳐본 것은 환승을 위해 다음 공항에 내렸을 때였습니다. “언니, 무사히 떠났어? 많이 피곤할 텐데 좀 더일찍 자도록 둘 걸 후회된다. 다음부턴 피곤하면 자고 싶다고 말해. … 난 누가 뭐라 해도 언니 믿는다. 내가 열심히 응원한다. 잠깐 이나마 얼굴 봐서 엄청 좋았음.” 그녀의 성격답게 내용도 깔끔했습니다. 지금까지 삼십 년 가까이 그녀를 보아왔지만 그녀는 해가 갈수록 점점 성숙해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나이가 들면서 더 세상에 때가 묻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S처럼 심지 굳게 살아가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성취를 이루는 이유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