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EO의창

마른 치약

마른 치약

여성들은 핸드백을 몇 개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깨에 걸치는 비교적 큰 사이즈의 숄더백부터 팔에 걸고 다니는 가방, 간단한 물건만 넣게 되어 있는 클러치백에 이르기까지 장소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핸드백이 있지요. 오늘은 가방 이야기를 하려나 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가방 이야기가 아니고 치약 이야기입니다. 저는 비교적 큰 가방을 많이 들고 다니는 편인데, 가방 정리를 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사이즈가 큰 가방이 제일입니다. 이것저것 모두 넣어 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 쓸 수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통상 작은 크기의 가방을 큰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행사나 식사 장소에 갈 때는 그 작은 가방만 가지고 다닙니다.


때로는 행사와 장소에 따라 가방을 바꿀 때가 있습니다. ‘마른 치약’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치약과 칫솔 세트는 반드시 가방에 넣어 다닙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가방을 바꾸려고 정리를 했더니 치약이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50 밀리리터 정도의 용량인데, 뚜껑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는지 치약이 딱딱하게 굳어서 영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부서지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저는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그 치약의 ‘일생’이 아쉽다는 느낌이 듭니다. 치약을 의인화하는 것이 우스운 일인지 몰라도 그 치약은 누군가의 이를 청소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말하자면 ‘용도 폐기’가 된다는 겁니다. 이 경우에는 사용자의 불찰로 치약이 말라버려서 용도에 맞는 쓰임을 받지 못하게 된 셈이지요.

 

‘마른 치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 사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능력과 재능이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용도 폐기’되는 일 말입니다. 치약이 용도 폐기되기까지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치약의 소유주가 치약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았을 가능성과 둘째로 치약 속에 수분이 빨리 증발하는 성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치약 속에 수분이 빨리 증발하는 성분이 없다면 치약 뚜껑만 제대로 막아 놓았다면 치약이 말라버리는 일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치약은 원래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를 청소하는 기능을 다했을 겁니다. 치약 속에 수분이 빨리 증발하는 성분이 있다면 소유주는 이 사실을 알고 치약을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소비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치약이 말라버린 모든 책임은 소유주한테 있다는 것입니다.


‘마른 치약’ 이야기를 조직에 적용하면 어떤 상황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치약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직원의 능력이 방전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겁니다. 또 한창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원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좋은 관리자는 ‘마른 치약’이 되지 않도록 직원들을 세밀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관리자 또는 책임자는 어느 가방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방을 바꿔 사용하는 중에 다른 가방에 남겨진 ‘치약’은 그가 가지고 있는 치약으로서의 능력이 서서히 말라버리는 과정을 겪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입장을 한 번 바꾸어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내가 만약 ‘치약’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지요. 비유의 편의를 다소 과장해서 의인화를 확대해 보자면, 소유주가 어떻게 하든 나는 내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소유주가 그의 용도에 맞춰 나를 사용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스스로 내 용도를 결정하고 주체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지요. 마냥 기다리다가 말라버리게 되면 나는 평생 아무짝에 소용없는 인생을 살다가 가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소유주가 나를 사용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내 용도에 맞는 일을 찾아서 내가 효용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삶이지요.

 

‘용도 폐기’는 그런 점에서 때를 놓치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휴가에도 적용이 됩니다. 직업 인생에서 후회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입사 직후 10~20년 동안은 대한민국이 쉴 틈이 없을 정도였기에 이해한다 해도 휴가를 갈 수 있는 형편이 되었는데도 제대로 사용을 못한 것 같습니다. 나만의 계획을 세워서 세상과 세계를 더 많이 보았다면, 더 많은 친구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는 상상도 해봅니다. 시간이 갈수록 움직이는 것이 점점 힘들고 여행하는 데 장애도 많이 생깁니다. 쉽게 움직일 수 있을 때, 거침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때 여행할 것을 후배들에게도 권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느끼는 것은 옛말 그른 것이 없다는 겁니다. 냉소적이고 무책임하게 들리는 이 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는 실상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논다’는 말에는 더 많은 경험을 하라는 뜻이 함축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CEO의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란법  (0) 2016.09.22
그녀  (0) 2016.09.12
루틴의 힘  (0) 2016.09.01
화장실 유감  (0) 2016.08.25
실력대로  (0) 201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