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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화장실 유감

화장실 유감

M스토리 63호에서 러시아 여행 때 겪은 일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여행 때 느낀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화장실과 관련된 것입니다. 제가 여행했던 노보시비르스크 지역은 수도 모스크바와 2천8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그러니까 변방의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 카자흐스탄과 몽골과 접경하고 있는 곳입니다.


흔히 여행할 때 가장 불편한 것으로 꼽히는 것이 ‘음식’이지만 이번 여행 때는 음식이라기보다 화장실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관광지에도 화장실 수는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청소가 거의 되어있지 않아서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저분한 화장실에 익숙지 않은 여성 대학원생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일도 보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오면서 손을 휘저었습니다. “이건 아냐!”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이 경우에는 화장실이라기보다 ‘변소’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요.


‘모든 것은 화장실로 통한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세식 변기가 갖춰져 있어야 하겠고, 그러려면 안정적인 물 공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유지,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청소를 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휴지와 같은 기본 용품도 비치되어 있어야 할 것이고 또 청소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관리하는 조직도 있어야겠지요. 지극히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 엄청난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 일입니다. 러시아는 인구가 1억4천만 명이 넘고 영토는 한반도의 90배에 가까운 걸로 알려진 대국입니다. 이런 광대한 나라 구석구석에 적절한 화장실을 설치하고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동할 때마다 화장실이 큰 문제였습니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을 들러서 나와야 했고 이동 중에는 화장실을 ‘견디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남성들은 ‘자연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6시간가량을 버스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는데, 중간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쉬는 곳이 있었습니다. 일행들은 유료 화장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화장실 앞에 줄을 섰습니다. 카운터에 있던 아주머니가 자물쇠로 두 칸의 화장실 문을 열어주어 양쪽으로 한 명씩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앞에 있던 일행에게 러시아어로 무언가를 요구했습니다. 참고로, 이 지역에서는 ‘헬로우’, ‘굿바이’ 정도의 영어도 통하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러시아어로 계속 언성을 높이다가 화장실 문을 바깥에서 자물쇠로 걸어 잠그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용료를 달라는 것이었는데, 마침 통역을 하던 가이드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겁니다. 카운터의 아주머니는 우리 일행이 돈을 주지 않고 그냥 이용하려는 줄로 오해를 하고 화장실 문을 자물쇠로 걸어 잠근 것이었지요. 러시아에서 화장실 사업을 하면 큰돈을 벌겠다는 농담까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화장실이 깨끗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선진국의 대표국가인 미국도 공중 화장실은 상당히 지저분한 편입니다.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이면 부근에서 노숙한 사람들이 토스트로 끼니를 때우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노숙자의 냄새’가 진동을 하지요. 터키 같은 관광국가는 아예 화장실 이용료를 받아서 비교적 깔끔한 화장실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에는 유료 화장실이 많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화장실이 깨끗해진 것도 불과 20여 년 전 일입니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거리 정비’에 나섰고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화장실 정화작업도 병행했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화장실을 개방하는 일반 건물보다 차라리 인근 지하철 역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쾌적할 정도로 공중 화장실은 깨끗합니다. 수시로 미화원들이 청소를 하고 걸레질을 해주어서 부담 없이 이용하게 됩니다. 동네마다 지하철 역 화장실 상태도 약간씩 다른 것이 눈에 띄는데, 화장실이 깨끗하다면 그것은 책임자들이 그만큼 유능하게 관리를 잘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필자에게는 아직까지 딱 하나 우리나라 화장실에 불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는 문구입니다. 사실 수세식 화장실은 화장지를 떠내려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용품을 제외한 휴지는 다 변기에 집어넣어도 됩니다. 그런데, ‘수압이 약하니 휴지는 변기에 넣지 마세요’라거나 ‘변기가 힘들어요, 휴지는 휴지통에’라는 메모지가 화장실 벽에 붙어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휴지를 휴지통에 넣어서 발생하는 비용이 수압 개선을 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훨씬 더 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휴지를 휴지통에 모으면 더 자주 휴지통이 차게 될 것이고 이것을 처리하려면 더 많은 미화원을 고용해야 할 것입니다. 휴지들을 모아서 수송하는 수송비, 처리하는 처리비도 만만찮습니다. 게다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흉한 휴지들을 눈앞에서 봐야하고 악취도 견뎌야 합니다. 비용을 계산해보면 어떤 것이 더 나을까요?


최근 일부 화장실들은 ‘깨끗한 화장실을 만드는데 협조해주세요’라는 메모지와 함께 사용한 휴지는 변기에 흘려보내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화장실 문화가 바야흐로 시작될 모양입니다. 여행자가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시 오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데 상당히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하기 불편한 화장실 이야기이지만, 지저분한 화장실을 실제 겪어보면 화장실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M스토리 독자 여러분의 근무처 화장실은 어떤가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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