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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루틴의 힘

루틴의 힘

지난 리우 올림픽 때 화제가 되었던 장면과 발언이 여럿 있지만 저의 기억에 남는 말은 ‘루틴(routine)’입니다. 루틴의 원래 의미는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일(a sequence of actions regularly followed)’입니다. 이번 올림픽 이전까지 저는 ‘루틴’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일’은 다른 말로 하면 ‘쳇바퀴 도는 생활’로 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창의적’이라거나 ‘혁신적’이라는 개념과도 거리가 먼 것처럼 들리지요.


그런데, 이 ‘루틴’이 이번 올림픽 때 ‘사고’를 쳤습니다. 언론에 공개된 한국 양궁의 기둥 기보배 선수의 수첩에는 야무진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장점은 심플하게 쏘는 것, 내 자세 기술(감각)을 믿는다, 긍정적인 것, 루틴만 하면 잘 될 거야. 루틴만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실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실력은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육상선수 볼트나 수영선수 펠프스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4년 동안의 연습의 결과가 경기 당일에 집약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연습을 충실히 한 선수의 경우에는 그 실력이 자연스레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펼쳐지면 뜻밖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세계 랭킹 1위의 선수들이 결승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줄줄이 낙마한 이번 올림픽을 보면 ‘실력’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올림픽이라는 것이 드러났지요. 하기야 세계 랭킹대로만 결과가 나타난다면 ‘올림픽’이라는 제도가 필요 없을 겁니다. 이변이 속출하고 예상이 빗나가는 뜻밖의 즐거움이 있기에 전 세계 관중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올림픽을 기다리는지도 모릅니다. 예상치 못한 장혜진 선수가 양궁에서 2관왕이 되면서 ‘만년 2위’에서 탈출한 것이 ‘2등 인생’들에 얼마나 희망을 주었겠습니까?


펜싱 에페에서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되뇐 박상영은 이 주문을 외우면서 이길 수 없는 경기를 이겼습니다. 9대 13으로 지고 있던 박상영은 결국 14대 14 동점으로 만들어놓았고 ‘할 수 있다’로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결국 1점 차이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세계 랭킹 21위로 올림픽에 첫 출전했던 박상영의 승리 비결은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루틴은 그러니까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것’이겠지요.


말하기는 쉽지만, 루틴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연습 때에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던 사람이 막상 경기에 출전을 하면 실력이 흔들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꼭 메달을 따야겠다는 욕심이 ‘오버’를 하게 만들거나 수많은 관중들이 의식이 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에게 밀리는 경우에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더욱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실력과 기량을 펼치고 결과는 내 실력을 평가받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평소 실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는 골프의 박인비였습니다. 박인비는 16 언더로 2위와 큰 차이를 유지하며 선두를 달리면서도 끝까지 냉정하고 침착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경기가 불리할 때나 경기가 잘 풀릴 때나 거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경기를 내가 한다’는 표정이라고 할까요. ‘평소대로 한다’는 루틴의 대표 선수가 박인비 아닐까 싶습니다. ‘돌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가 확연히 다른 표정을 보인 것이 단 한 차례 있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마지막 홀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모습 말입니다. 폭염에 지치고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시원한 승리감을 맛보게 해주었지요. ‘애국가가 내 인생 최고의 노래’라는 멋진 말도 한국 올림픽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루틴은 그러니까 평소 실력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시험을 보기 며칠 전부터는 평소 먹던 음식을 먹고 평소 잠자던 시간에 자라고 하는 것도 ‘루틴’을 유지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루틴이 힘을 발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평소 실력이 없으면 루틴대로 해도 승리는 없습니다. 루틴은 그러니까 있는 실력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지 없는 실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평소에 실력을 연마해야 결정적인 순간에 실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루틴으로 닦은 실력이 나타나게 하는 것은 물론 정신 훈련, 자기연마일 것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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