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대로
대한민국 양궁이 화제입니다. 양궁 이야기가 주요 일간신문의 톱기사를 장식한 것은 전 국민의 열광을 반영한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올림픽 역사를 새로 쓴” 대한민국 양궁이 “전 종목 석권”을 달성한 비결은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비결’로 숭앙을 받는 이유는 우리 일상에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보기가 드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실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선수 6명 가운데 올림픽 경험을 가진 사람은 기보배가 유일합니다. 런던에서 금메달을 땄던 오진혁도 대표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시고 리우행 티켓을 따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대표 선수로 선발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겁니다.
지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조차 과감하게 배제를 한 덕분에 새로운 선수들도 도전의식을 가지고 연습을 했을 것입니다. 또 메달을 딴 선수들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큼 더 노력을 하게 되겠지요. “그들에게 계파는 없었다”는 신문 헤드라인을 뽑는 것은 스포츠의 다른 종목에서는 계파로 인한 부작용이 있다는 걸 반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는 본인이 원하는 스포츠 활동을 위해 조국까지 떠나서 귀화한 러시아에 올림픽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안겼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 최고인 안 선수를 떠나게 한 것은 ‘파벌’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국을 버린’ 안 선수를 비난하기는커녕 동정론이 일었습니다. 박태환이 이중징계를 받은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잡음이 흘러나옵니다.
어제(8월 16일) 귀국한 양궁 대표단은 공항에서부터 엄청난 환영을 받았습니다. 수백 명의 취재진이 장사진을 쳤고 일반 시민들까지 몰려들어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것은 메달을 딴 선수들은 물론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한 양궁협회에 보낸 갈채이기도 했습니다. 덩달아 양궁협회를 후원하는 한 대기업의 가치도 올라갔습니다. 그 기업은 몇 백억 원을 들여 광고 홍보를 한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단지 ‘실력대로’ 선수들을 선발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한 시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데 준비를 하다보면 실력만이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이번 양궁은 정말 실력으로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온 게 뜻 깊고 좋았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실력대로’의 힘은 큽니다. 실력대로 선수를 선발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열심히 해서 실력이 향상되면 선발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거기에는 선후배도 없었고 지난 올림픽 때의 후광도 없었습니다. 협회의 실력자에게 능력 외에 잘 보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실력대로 선발하니 떨어져도 불만이 없었습니다. 깨끗한 승부와 승복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난히 우리나라에는 계파나 파벌과 관련한 말이 많습니다. 가장 큰 능력은 혈연, 학연, 지연이라는 비아냥도 나옵니다. 좋은 학교를 가려면 필요한 것이 할아버지의 돈과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정보라는 말도 있습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 이어 무수저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모든 스포츠의 선발 절차가 양궁처럼 진행됐다면 더 많은 훌륭한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고 결과는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온갖 협회들의 ‘계파’와 ‘파벌’은 청산해야할 구시대 유물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희한한 것은 이런 지적과 비판이 올림픽 때마다, 월드컵 때마다 반복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적과 비판은 다른 세계의 일이라는 듯 관행과 관례, 그리고 ‘계파’와 ‘파벌’의 수장이 갖고 있는 엄청난 힘에 눌려서이겠지요. 비단 스포츠뿐이겠습니까.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