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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사모광장

50년 된 약속

1994년 7월 7일, 햇볕이 쨍쨍했다. 올 여름만큼 불볕더위였다. 두 아름은 넉넉한 큰 은행나무 아래, 세 개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언약을 맺었다. 10년 후 이날 여기서 다시 만나자. 여름 방학을 이용해 한국의 문화와 언론을 공부하러 온 대학생들이었다. 2004년 7월 7일, 그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대전역을 출발했다. 약속 장소인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그곳에도 굵은 비가 쏟아졌다. 은행나무는 베어져 그루터기만 비에 젖었다. 오래 기다려도, 어른이 된 열 두 명의 학생들은 그곳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시간 강사였던 나는 그들의 선생이었다. 지금도 학생들과 맺은 10년 약속 두 개가 진행 중이다. 5년차와 8년차이다. 20년 된 약속 하나는 만기일이 코앞까지 왔다. 세월에 시간이 미끄러지듯 씻겨도 하늘에다가 말로 쓴 약속은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대전MBC와 인연은 우리 지역의 법조비리 사건 보도를 학술적으로 다루면서 깊어졌다. 수십 개의 지역 방송사가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었던, 공영방송과 지역방송의 존재한마디가치를 매우 분명하게 확인해 준 방송이었다. 지역의 현안을 심층적으로 다룬 뉴스들이 한국방송대상을 자주 수상한 내역도 대전MBC의 역량을 보여 주었다. <시사플러스>도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내가 접한 대전MBC 사람들은 역량과 온정, 두 가지를 고루 갖춘 분들이다. 나는 그 자산이 대전MBC를 유지해 온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대전MBC 창사 50년이 되던 해, 우리 지역 원로 선생님들의 대담에 낄 행운이 주어졌다. 대전MBC가 반백년 걷고 뛰어 온 자취를 가까이 지켜본 산 증인들이셨다. 선생님들 말씀대로 대전MBC의 50년 역사는 우리 지역 격동의 현대사 자체였다. 대전MBC에 전하고 싶은 말을 할 차례가 되었다. 그 때 나는, 50년 후에도 우리의 후배, 후손이 된 누군가가 모여 앉아 대전MBC 창사 특집 좌담회를 열기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을 위해 올곧게 다시 50년을 건강하게 살아남아 창사 100년의 역사를 이루어 달라고 부탁했다. 5년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언론 환경의 변화를 가늠하건대, 이 땅의 언론 기업들이 향후 50년 동안 같은 이름의 문패를 달고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전MBC는 창사 50년 즈음한 비전 선포식에서 ‘백년친구 대전MBC’를 주창했다. 감동, 소통, 나눔이라는 키워드도 제시했다. 단순한 지역의 정보 신경망 역할을 넘어, 우리 지역 사람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디딘 발의 지점과 발끝의 방향은 사물을 보는 관점을 결정한다. 지역민과 함께 50년을 더 걷고 뛰어갈 때, 지향점과 관점을 늘 되새겨 주기 바란다. 5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헌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10명의 대통령을 더 뽑아야 하고, 국회의원 선거를 열두 번 치러야 한다. 열두 번 더 올림픽을 지켜볼 수 있다. 월드컵도 그렇다. 방송사 내부적으로 인사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스무 명 안팎의 사장님들이 취임 인사를 할 시간이다.


백년친구는 두 가지 약속을 담고 있다. 향후 50년을 거뜬히 살아남겠다는 약속이고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지역민들과 ‘친구’로 동반하겠다는 약속이다. 대전MBC의 백년친구 모습을 확인할 사람은 우리 세대가 아니다. 지금 여기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50년 된 대전MBC의 약속을 확인할 사람들이다. 50년은 길지만, 그렇다고 50년 된 약속이 쉬이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건강하게, 백년친구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