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오세요. 사진 찍는 게 뭐 어렵다고. 당연히 찍어 드려야지.”
녹화를 기다리며 스튜디오에서 기타를 튕기던 해바라기, 이주호.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본 팬들에게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십여 명의 팬들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허참의 토크&조이> 녹화가 시작됐다.
해바라기가, 해바라기가 되기까지
“초창기 멤버는 넷이었어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 보니까 다 각자 뿔뿔이 흩어졌더라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짝을 찾아서 활동을 다시 시작한 거죠.”
70년대 후반, 명동의 가톨릭여학생회관 ‘해바라기 홀’에서 결성된 해바라기. 당시의 멤버는, 이름만 들어도 무릎을 칠법한 인물들이었다. 신촌 블루스 이정선, 한영애, 김영미, 그리고 잠시 군대에 가느라 자리를 비웠던 이주호를 대신한 이광조까지. 지금은 상상 불가능한 전설들의 만남. 하지만, 그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워낙 개성 강한 멤버들이다보니 금세 각자의 음악을 하기 위해 흩어졌고 이후 해바라기라는 이름은 이주호를 중심으로 한 포크 듀오로 탈바꿈, 현재까지 그 맥락을 이어오고 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명성에 비해 팀 멤버 교체가 너무 잦았던 게 탈이었다. 그러다 99년, 이주호는 당시 스물아홉살에 불과했던 강성운을 ‘발견’한다.“카페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데 아는 선배가 그러시는 거예요. ‘너, 해바라기 해볼래?’... ‘네? 무슨 해바라기요?’ 그랬어요. 설마, 그 해바라기가 이 해바라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죠.”
중학교 때부터 해바라기의 열렬한 팬으로, 카피 밴드 ‘해보라지’까지 만들어 활동했던 강성운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주호와의 만남은 꿈이자, 기회였던 셈. 그리고 해바라기는, 안정적인 팀워크를 갖게 된다.
해바라기, 노래를 말하다
“해바라기 노래를 정말 엄청나게 연습했어요. 틀리지 않고 연주할 자신이 있었죠. 그런데, 선배님과 처음 합을 맞춰보자마자 무릎을 꿇었습니다. 너무 어렵더라고요. 고수는 역시 다르구나, 했습니다.”
강성운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해바라기를 백조에 비유했다. 볼 때는 편안해 보이지만, 정작 기타와 목소리, 또 서로의 감정과 화음까지 공연 내내 그 모두를 세밀하게 조율하느라 상상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저희 둘이 18년 동안 같이 합을 맞추고 노래를 해왔지만,아직도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매주 두 번은 꼬박 꼬박 만나서, 연습실 문을 잠근 채 합을 맞춰보죠”
그들이 우리나라 최장수 듀오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시, 노래가 되다 “제 노래 중 가사가 마음에 드는 곡이라. 내 마음의 보석상자 일 것 같은데요?”
멜로디도 좋지만, 유난히 가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바라기의 곡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묻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기타를 드는 두 사람이다.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마치 맞춰보기라도 한 듯 자연스레 노래가 흘러나오고. 나이를 잊은 미성으로 들려주는 감미로운 노랫말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시간도, 나이도, 공간도 두 사람의 노래 앞에선 무의미해졌다. 그저, 무대 위 음유시인과 그들의 노래에 젖어 행복한 청중들만이 존재했을 뿐. 끊이지 않는 박수 세례에 해바라기는 녹화 중간 중간, 곡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망설임 없이 즉석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역시, 두사람에겐 대화보다 노래가 더 맞는 옷이었던 셈이다.
포크, 통기타. 그게 바로 해바라기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대상을 저희가 직접 줬어요. 우리는 특별상을 받았고요. 그 때 알았죠. 이제 시대가 바뀌겠구나. 그들의 세상이 오겠구나.”
가슴에 끌어안고 연주하는 악기, 기타로 시와 같은 가사를 읊조리듯 노래하는 국민 듀오, 해바라기. 그들의 말 대로, 시대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튜디오의 모든 이들이 같이 입을 모아 ‘사랑으로’를 부르는 광경은, 해바라기가 아니고선 절대 연출할 수 없는 신성한 그 무엇과도 같았다.
“열심히 무대에서 공연하고, 신곡도 내고 그래야죠.” 스튜디오 안 모두를 감동에 젖게 만들었던 두 시간. 해바라기는 그렇게 노래와 웃음을 남기고 다른 공연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강미희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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