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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이게 다 정 때문이라예!”

 

 

“안녕하십니까. 할리라예!”
기운찬 경상도 사투리가 스튜디오 안에 울려 퍼지자, 방청객들의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인사말 한 마디로, 모두를 무장해제 시킨 이 남자. 푸른 눈의 한국인, 로버트 할리 한국 이름 ‘하일’이 <허참의 토크&조이>를찾았다.

 

 

영도 하씨 1대손 ‘하일’로 다시 태어나다
“제가 아는 외국인 대부분이 그래예. 여기서 2,3년 살다보면 돌아가기가 싫어진다꼬예. 미국엔, 이런 따뜻함 절대 없거든예!”


70년대 말, 열아홉 살의 나이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는 로버트 할리. 문어 숙회 한 점 먹는 것도 힘들어 수백 번을 씹고 또 씹던 그가,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가 만난 사람들이 보여준 정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외국인 장정들의 속옷을 빨아주던 하숙집 아주머니, 지인 한 명 없는 땅에서 맹장 수술을 마치고 누워있는 그의 곁을, 24시간 지켜주던 학교 동기들, 그리고 운명적으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아내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보여준 정 때문에 할리는 한국에마음을 주었고 평생을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 한국 국적까지 취득, 영도 하씨 1대손이 되었다.

 

 

 

 

상상 초월, 러브스토리
“프러포즈를 하려던 날, 와이프가 그만 만나자고 하더라고예. 더 이상 안 될 것 같다나…. 호주머니 속에 반지가 있었는데, 이걸 어떡하냐고예.”


흔히 보는 드라마 속 전개라면 그대로 반지를 꺼내지 않은채 돌아섰어야 했지만, 그는, 로버트 할리였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예요! 내가 당신 주려고 반지까지 샀는데, 헤어지자니! 여기 봐요! 반지! 보여예?!’ 그렇게 소리쳤지예. 진짜 화났었어예!”


그만 만나자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할리. 박력있는 모습을 보인 게 신의 한수였다. 3일 만에 아내는 다시 돌아왔고,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결국 모두의 축복 속에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그리고 벌써 30년. 두 사람은 여전히 금슬 좋고 행복한 잉꼬부부로, 많은 다문화 가정의 모범이 되고 있다.

 

경상도 사나이가 사랑하는 법
“어디 결혼한 여자가 동창회를 가예? 못 가게 하지예. 가지 말라고 잡는데, 우리 와이프는 이제 자기가 알아서 가예. 못 잡아예.”


주말 부부다 보니 아내가 주중에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입술을 삐죽거리는 로버트 할리. 보수적인 이 남자의 귀여운 질투에 방청객들이 꺄르르- 뒤로 넘어간다. 할리는 소곤대며 아내 흉을 보다가도 아내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라도 나눌까봐 긴장하고 아빠의 지갑에서 카드를 훔쳐 쓴 막내아들 이야기에 핏대를 세우다가도, 금세 “그래도 애가 착해요”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것. 그게 바로, 경상도 사나이 로버트 할리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원조 외국인 스타,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할리는 지역 방송을 통해 부산에서 먼저, 유명인사가 됐다. 사투리를 쓰는 재미난 외국인이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그를 찾는 곳은 계속해 늘어났다. 그렇게 스타로, 방송인으로 산지 어언 20여 년. 그는 이제, 그저 재미난 외국인 아저씨에서 벗어나 이 땅에서, 모두와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법을 고민하는 중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잘 한 일이, 바로 한국에 온 거라예. 여기 안 왔다면 와이프도 못 만났을 거고, 아이들도 없었을 거니까예.”


그래서 할리는 전 재산을 퍼부어 학교를 만들었고 다문화가정을 위한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방송이 만들어 준 자신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대한민국을 위해 달리고 있는 셈이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예.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거지예.”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스튜디오를 떠났다. 마음 가는 대로인생을 디자인할 줄 아는 사람. 로버트 할리의 다음 인생 단계가 몹시 궁금해진다.

 

강미희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