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즈음 TV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광고를 피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습관적으로 MBC에 멈췄다. 빨간 벽돌 건축물들이 인상적인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알비(Albi)를 소개하고 있는데 <백제, 세계를 품다>라는 화면 왼쪽 상단의 프로그램 타이틀을 확인하고 나니, 이후의 내용이 더궁금해졌다. 평소 여행 소재의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편이었기에 채널 고정!
눈앞에 펼쳐지는 프랑스 알비의 생트 세실 대성당, 파리의 세느강변과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요르단 고대 신전의 도시 페트라까지... 눈과 귀가 모두 호강하며 프로그램이 이끄는 대로 나는 이미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고 싶은 도시 파리의 최근 풍경과 내가 기억하는 2014년의 파리를 비교해가며 정신없이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경관과 화면이 보여주는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 파리는 한해에만 1억 명이 넘는 관광객들로부터 약60조원의 경제 수익을 얻고 있다.
세계의 유명 관광지에 이어 눈에 익숙한 풍광이 펼쳐졌다. 우리지역 공주에 위치한 천연 요새 공산성, 국사시간에 배워 익숙한 무령왕릉 송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5층 석탑 등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소개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이 난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지난해 7월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소중한 관광자원이다. 그런데 솔직히 프랑스 파리와 요르단 페트라, 터키 이스탄불 등의 관광자원에 비해 우리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보고 있자니 왠지 초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도 ‘매장유적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광객들이 볼거리가 덜하다는학술적인 해설을 덧붙였다.
그러나 ‘매장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사례로 터키 서부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 에페수스가 소개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종교중심지이자 문화예술 중심지인 에페수스 유적지는 현재 복원이 진행 중이어서 17%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복원 모습을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규모나 외양 면에서 세계 유명 관광도시들에 비해 다소 빈약할 수는 있지만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지닌 문화적·역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무령왕릉 내부의 건축양식은 중국 양나라의 건축양식이고, 관은 그 당시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또한 왕릉 곳곳에서 출토된 유리구슬은 인도의공예양식이라는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백제는 동북아의 역사교류 거점, 나아가 인도와도 거래를 했던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IT 융복합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관광객들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공감됐다.
한편 바로크와 고딕 양식이 결합된 건축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인 독일의 드레스덴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가 2013년 드레스덴 엘베강 유역의 다리건설로 가치가 훼손되어 등재 기록 자체가 삭제된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2012년 출장차 드레스덴에 열흘 남짓 머물며 엘베강 유역을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더욱 안타까웠다.
이틀 동안 1, 2부에 걸쳐 방영된 대전MBC 특집프로그램<백제, 세계를 품다>에 소개된 모든 유적지와 도시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기억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아쉽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정성스러운 집밥을 먹 은 느낌이 이러할까?
정성스레 갖가지 나물을 볶고 삶고 데치고 버무려 한줌씩 올려놓고, 고명으로 얇게 저민 고기와 참기름으로 맛을 낸 집밥을 단숨에 비우고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준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눈과 귀가 즐겁고, 뇌세포를 적절하게 자극하여 깨우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1부는 채널을 돌리다 큰 기대 없이 우연히 보게 됐고, 2부는 방송시간을 기다려 시청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세계 각국의 관광명소를 화면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그리고 왠지 모를 사명감에 PC 앞에 앉아 2회모두 다시보기를 하면서 우리가 과연 프랑스인들처럼 선조들이 남긴 역사유적을 활용하여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고 그효용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1년을 맞은 지금, 어떤 유적지가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해당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컨벤션센터나,일본 교토의 니조성과 같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관광자원을 MICE산업과 접목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안 등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의 보존과 가치 활용 등에 관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는데 이는 지자체 및 관의 역할일 것이다. 이에 앞서 지역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존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채건하 | 대전MBC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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