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마니’와 ‘싸요싸요’
터키 에페수스를 여행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며칠 만에 한식당에서 식사를 한다는코디네이터의 말을 듣고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지식을 하다가 모처럼 한식당에 가게 되면 누구나 그렇듯이 반갑기 마련입니다. 메뉴에 있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라면, 냉면, 갈비 등의 음식 사진을 보며 군침을 삼키는데, 벽에 붙어있는 문구 하나가 눈길을 잡았습니다.
‘뜨거운 물 1달러’, 이 문구를 보니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식당 주인에게 알아보니 ‘뜨거운 물 1달러’의 배경에는 ‘알뜰한 한국 아줌마 부대’가 있었습니다.
한때 터키는 한국인들의 주요 관광지였습니다. 사도 바울, 빌립보 등 신약 성서에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쳐 간 곳이기도 하고고대 유적이 보존이 잘 된 곳이라 성지 순례에 나선 신자들은 물론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지였습니다. 지금이야 테러 때문에 관광객 수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한때는 아야 소피아, 블루모스크가 있는 술탄 아흐메트 지역에서는 곳곳에서 한국말을 들을 수가 있었지요. 관광지에 워낙 한국 관광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룹을 옮겨 다니며 가이드들의 설명만 들어도 별도의 안내자가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에페수스도 신약성서 에베소서의 무대니만큼 한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하지요.
‘한국 아줌마’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벌써 그렇지만 한국의 중년 여성 관광객들은 매우 알뜰했다는 것이 식당 사장의 설명이었습니다. 가방에 컵라면을 가지고 와서 ‘뜨거운 물’을 요구하곤 했다는 겁니다. 말이 쉬워 ‘뜨거운 물 조금’이지 이삼십 명이 와서 서너 사람만 식사를 하고 나머지는 컵라면을 꺼내 먹으면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거지요. ‘뜨거운 물 1달러’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장소 제공비는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겠지요. 포도주나 위스키 같은 술을 식당에 가져가서 마실 때 내는 ‘코키지(corkage)’와 같은 개념이랄까.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듣기 거북한 소리가 ‘싸요싸요’라든가 ‘양마니’라든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 노점상조차도 ‘코리아? 양마니 줄게’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는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싸게 해 달라, 양 많이 달라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관광지의 상인들 입에 이런 표현이 붙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그리고 터키에서도 이런 소리를 들었으니 말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황금률 (Golden Rule)’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식당 주인이라면 컵라면을 가져와서 뜨거운 물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좋아 보이지 않겠지요. 그까짓 뜨거운 물 조금 주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식당 주인에게는 생업이 걸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관광객들이 있습니다. 특정 국가의 사람들이 특히 더 시끄럽고 교양이 없고 무질서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본인들은 난생 처음 하는 해외여행에 기분이 들떠서 일탈 행위를 할지 모르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주 괴롭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단체 관광을 한다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휴가철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국내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나라의 격에 맞는 여행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품격 있는 여행자라는 소리를 듣고 한국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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