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과 결혼한 젊은 외국인 여성은 한국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런 그녀가 모국을 방문한다. 고향에 도착해 집에 찾아가니 초라한작은 집에 대가족이 모여살고 있다. 이게 몇 년 만이던가. 그녀와 부모의 상봉은 만나자마자 울음바다가 된다.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드리고 짧은 며칠을 함께 보낸 후, 또다시 눈물의 이별을 한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간 딸과 손주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리워하고, 딸은 재회를 기약할 수 없음에 설움이 북받쳐 고개를 떨구고 만다...’
당진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실시한 필리핀 결혼이주여성가족들의 모국방문 동행취재를 지시받았을 때, 처음 머릿속에 그려진 프로그램 구성안은 이러했다. 어디서 본 듯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가장 무난한 구성. 이제, 고향이야기를 하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한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했던 가련한 이방인 여성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당진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방문한 첫 섭외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설정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혼 이후 고향에 못가 본 사람도, 안타까운사연의 주인공도 없었다. 적어도 이번 행사에 참여한 가족 중
에서는. 사전 취재를 하면서 밝고 명랑한 가족들을 보며 내 눈에 덮여진 것들-일종의 편견들-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다문화가족과 함께 해온 지원센터 장순미 센터장의 ‘다문화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할 때’라는 말에 공감하며 ‘가난하고 불쌍하게 비춰지던 모습을탈피,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고향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밝은 모습을 통해 다문화가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모국에 도착한 가족들은 세부시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 함께 수업을 듣고 한국전통놀이를 같이 해보는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아이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놀이를 통해 금세 친구가 됐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복으로 갈아입은 어머니들은 여러 달 준비해온 부채춤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들은 이제는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자녀들을 데리고 모국을 방문해 한국문화를 전하는 훌륭한 민간외교관인 것이다.
빈민가에 위치한 수녀원, 17년째 이곳에서 봉사하고 계신엘리아니 원장수녀님의 말씀에 따르면 매일 아침 문 앞에 서있는 아이들이 꽤 있다고 한다. 먹을 게 없어서다. 방문팀은 쌀과 학용품 등 선물을 전해주고, 준비한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한여름날씨에 단벌옷인 긴 바지를 입고 온 소녀, 깡마른 몸에 눈만 반짝이는 고국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눈가는 촉촉해지고, 한국에서 더 열심히 살아 다시 와서 도움을 줄 기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2006년 4월, 정부는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을 처음으로 수립
해 시행했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지 10년이 지난 것이다. 2015년 현재, 국내 다문화가구 는 278,036 가구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3%에 해당한다. 초등학교 다문화학생 비율은 2%를 넘어섰다. 50명 중 1명이라는 이야기다. 5월 20일은 제 9회 <세계인의 날>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할 때다. 3박 5일의 짧은 여정, 아이들을 꼼꼼히 챙기고 다독이는 눈물 많고 열성적인 어머니들. 다문화가족, 그들은 그냥 우리였다. 우리도 다문화(multicultural)의 하나일 뿐, 애써 그들을 특별한 배려 대상으로 다르게 볼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이번 취재에서 가장 큰 걸 얻어가는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그들을 만나러 이번 일요일 ‘당진 다문화축제(5월 22일 오후 2시, 당진시청)’에 가봐야겠다. 말이 조금 서툰 한국사람, 우리 이웃을 만나보고 싶은 분들은 함께 하셔도 좋을 듯하다.
‘글로벌 해외봉사단’을 추진한 당진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사회공헌활동으로 함께 참여한 한국전력공사 대전지사 관계자들께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지원이 있기를 바란다.
이은표 부장 | 편성제작국 편성기획부
‘글로벌 해외봉사단’ 취재 내용은 5월 20일(금) 세계인의날에 <생방송 아침이 좋다>에 방송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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