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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you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기사 한 줄
초등학생 쌍둥이 형제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중학생 형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성추행 정황이 있는데도, 출동한 경찰이 단순 폭행으로 처리해 성추행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의료적, 법률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부터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적극적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취재 결과, 쌍둥이 형제의 성기가 심하게 훼손된점, 강제로 화장실로 끌려가는 CCTV가 발견된 점 등 강제 성추행으로 봐야할 근거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관할 경찰서는 파출소의 사건 보고에만 의존한 채 피해자에 대한 추가 조사를 하지 않은 점이 드러났습니다. 분명한 문제라고 판단했고 그런 내용을 그대로 담아 기사를 썼습니다.

 

그 날 저녁, 기사가 나갔고 그 날 이후로 저는 꽤나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방 경찰청 홍보실부터 관할 경찰서에서 온 전화, 가해자 부모의 지인이라며 온 전화, 시의회
에 민원이 들어왔다며 온 전화, 아파트 입주민이라며 온 전화 등 출처도 다양했습니다. 제가 취재해 보도한 기사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한 것입니다. 실제로 관할 경찰서에서는 해당 내용의 수사를 다시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이런 반응을 처음 경험한 저는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제가 쓴 기사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사 때문에 누군가의 삶이 바뀌고 울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끼게 해줬습니다. 이런 막중한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꼼꼼한 취재력’과 ‘진실을 파악하는 눈’
수습 해제 2개월 차, 기자라는 무거운 이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갖춰야겠다고 결심합니다. 하나는 ‘꼼꼼한 취재력’입니다. 제보자 등 특정인의 말만 듣고 취재를 하다보면, 특정 입장에 지나치게 치우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쌍둥이 성추행 사건 취재 때도 피해자 부모의 입장에 내가 너무 경도된 게 아닐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취재해야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 경찰의 입장 등 사건의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빠짐없이 듣고 추가적으로 CCTV 등과 같이 객관화된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이 꼼꼼히 이뤄져야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제 기사에 확신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는 ‘진실을 파악하는 눈’입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서로의 변론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바보 같이 믿고 선배들에게 보고해 지적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취재원들은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반드시 진실을 얘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실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바로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는 끄덕이며 공감하는 척하면도 속으로는 물음표를 던지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예리함, 통찰력을 갖춰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수습 해제 2개월 차, 아직은 기자라는 이름이 무겁기만 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더 꼼꼼하고 철저하게 취재해 책임감 있는 기사를 쓸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계속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그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기자로 성장 할 수 있겠죠? 선배들의 많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많이 가르쳐주세요.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우겠습니다!

 

조명아 | 보도국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