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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어느 후배 이야기


오늘은 어느 후배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같은 출입처에서 2년 남짓 근무했던 그 후배는 둥글둥글한 성격에다 재주가 많아서 선배들로부터 큰 신임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같은 부서에 근무해 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평판으로 알려진 사실도 막상 같이 근무하다보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평판과 다른 경우가 많으니까요.


시청자 여러분은 MBC 기자 가운데 누구를 기억하시나요? 아마 여러분들 머리에 떠오르는 기자가 있다면, “우리 MBC가 그래도 일을잘 했구나”라고 자체 평가를 할 수 있겠지요. 만약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MBC뉴스, “OOO입니다”라고 매일 밤 (또는 아침) 외치는데도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우리의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서론이 길었나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던 그 후배는 쉽게 잊히지 않는 기자였습니다. 그 친구는 방송 시간 직전까지 기사를 가지고 ‘주물럭’거려서 방송 사고가 나지 않을까 답답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중간에 슬쩍 그 후배가 저장해놓은 기사를 보면 흠잡을 데가 없는데도, 또 읽어보고 또 확인하고 또 고치는 것이 마치 가마 속에 들어가기 전 도자기 하나를 정성껏 손으로 매만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떤 편이었나 하면, 방송사고를 낼까봐 ‘온 에어 (On Air)’ 10 분 전까지는 완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을 하고 난 다음 “아, 이런 표현이 더 좋았겠는데...”하고 아쉬움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런데, 그 후배는 갈고 닦고 또 매만지면서 최상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까지 한숨을 쉬는 것이었어요. 어떨 때는 ‘그만 하라’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제 시간에 방송이 나가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방송사고’니까요. 실제로, 한 번은 그 후배가 기사를 보고 또 보고 하는 바람에 예정된 시간에 못 나가는 ‘방송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그런데’를 쓸 것인지 ‘그러나’를 쓸 것인지 10분, 20분을 고민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후배의 경우 대부분은 ‘그런데’나 ‘그러나’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에게 더 충실한 기사를 전달할 것인지를 두고 정성을 쏟았지요. 나의 문장 하나가 어느 한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면, 내 기사 하나가 어떤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서 세상을 바꾸게 된다면 노벨상 못지않은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어떤 한 이슈에 대해 각 언론사들이 쓴 기사를 비교해보면 ‘친절한 기사’와 ‘불친절한 기사’가 확연히 구분이 되지요. 기사 한 줄 한 줄에 정성을 쏟았던 그 후배는 많은 특종을 건져냈습니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충실한 취재를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취재원에 남다른 공을 들여야 했으니까요.


점심 한 끼를 위해서도 우리는 더 맛있고, 더 친절한 식당을 찾습니다. 접시 한 귀퉁이에 장식으로 놓아둔 ‘가니시’ 하나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더 맛있고 더 친절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왜 우리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시청자들은 보지 않나, 이런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맛은 본질이고 본질로 접근하게 하는 것은 방식입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충성심’으로 프로그램을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저도 구내식당을 종종 이용하는 사람이지만, 값이 싸다고 구내식당을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음식 맛이 있어야 하고, 서비스가 좋아야 하고, 테이블 세팅이나 인테리어 등이 품격이 있으면 더 자주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요. 외부 손님도 초대하고 싶을 것이고요.


다소 장황하게 그 후배 이야기를 한 것은 대전MBC가 시청자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류와 삼류를 가르는 것은 ‘디테일’이라고 합니다. 음식이 삼류라면 아무리 멋진 그릇에 담겨도 고객의 외면을 받겠지요.


6월에 대전MBC는 더 재미있고 더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보도 쪽에서는 요르단 현지 취재의 결과물을 시청자들에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공군 조종사가 테러 그룹 IS에 화형당한 뒤에 보여준 압둘라 국왕의 리더십과 최근에 우리 기업들에게 미래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 ‘할랄 푸드’, 또 페트라 유적과 제라시 등 장대한 유적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인디애나 존스 영화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페트라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지요.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교훈을 페트라 취재가 보여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6월의 태양처럼 뜨거운 나날을 사시기 바랍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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