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20일이 넘었습니다. 확진 환자 발생이 최초 발표된 것이 5월 20일이었고 이후 지난 20여일은 공포영화처럼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국민들에게는 1번 환자 발생 보도 이후 하루하루가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었습니다. 확진 환자가 추가됐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이번에는 어딘가’ 하는 궁금증이 패닉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은 환자와 사망자를 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치사율이 40 퍼센트에 이른다는 사실은 공포 확산에 한 몫을 했습니다.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사망자의 수는 숫자에 불과할지 몰라도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단 한 명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들입니다.
메르스의 교훈을 이야기하기에 시간이 너무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미리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지요. 속담과 격언이 그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됩니다. 1번 환자가 발생했을 때 총력을 다해 격리하고 확산을 막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엄청난 손실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보건당국에서 이미 시인한 바 있지만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전염병의 경우에는 최악을 상정하고 ‘과잉대응’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지적은 두고두고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설사 환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아 당국이 괜히 불안감만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추가 희생을 방지할 수 있었겠지요.
테러나 전염병은 말 그대로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911 사태 직후 미국이 공항이나 주요 시설에서 행했던 조치들을 떠올려봅니다. 미국 당국은 추가 테러를 막기 위해 즉각 보안 강화 조치를 취했습니다. 지나치다고 할 정도의 조치들이 국가 주요 시설에 취해졌습니다. 공항 검색대 앞에서 입고 있던 재킷은 물론 신발까지 벗어야하는 일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3천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기에 시민들은 불편을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설사 있다고 해도 용인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인지 이런저런 테러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대규모 테러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염병 역시 테러에 대응하듯 대처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1번 환자가 사우디아라비아 여행 사실을 정직하게 알렸더라면, 외교당국이 이 환자의 여행 기록을 철저하게 조사했더라면, 보건당국이 더 철저하게 격리했더라면 현재 수준의 희생은 치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러나 전쟁 중에 내분은 피해야하지요. 일단은 메르스의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보건당국은 총력을 기울여서 ‘슈퍼전파자’를 철저히 차단해야 하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겠지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도 필요합니다. 의심 지역과 접촉이 있었다면 신고하고 자발적으로 격리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답답하다고 피하거나 사실을 숨기면 더 큰 희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린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의무를 다하지 않아 타인에게 병을 옮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메르스가 남긴 교훈은 큽니다. 조직이나 개인이나 작은 문제가 발생하면 초기에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피해가면 대충 정리되겠지’하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문제가 커지고 당사자는 물론 조직에까지 치명적인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괜찮겠지,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이 오늘날 메르스 사태를 키운 것 아닐까요? 메르스로 인해 한국 관광을 취소한 이들의 수가 5만 명을 넘어섰고 온갖 국내, 국제 행사가 연이어 취소되고 있습니다. 홍콩, 대만, 러시아 등 일부 국가는 한국에 대한 여행을 자제하라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모건 스탠리는 메르스 사태가 3개월간 지속될 경우에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0.8 퍼센트 하락할 거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선진과 후진을 가르는 기준은 역시 디테일, 세부 사항에 있습니다. 후진국들에 가보면 모든 것이 엉성하지 않습니까? 도로도 엉성하고 건물도 엉성하고 제도도 엉성합니다. 엉성한 것의 반대가 ‘디테일’이지요.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다시 한 번 엉성한 것을 꼼꼼히 점검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시청자, 독자 여러분도 안전한 한 달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CEO의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보고 싶을 사람 (0) | 2015.07.13 |
---|---|
일 (0) | 2015.07.06 |
“저녁 준비했으니 점심 먹지 마세요” (0) | 2015.07.06 |
어느 후배 이야기 (0) | 2015.07.06 |
지식의 보물창고를 선물한 스미슨과 5월 (0) | 201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