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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저녁 준비했으니 점심 먹지 마세요”


지난 주말에 겪은 황당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중동의 국회의원단이 대전MBC를 비롯해 두어군데 연구 기관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초 일정은 대전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하고 연구 기관에서 ICT 체험을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대전MBC에서는 이름표를 비롯해 담당자들이 꼼꼼하게 준비를 해두었지요. 외국 손님들이 중요한 것은 언론사에게는 중요한 취재 네트워크이기도 하고, 대전 지역 연구 기관들에게는 방문을 계기로 기술, 제품 계약 성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문 전날 밤에 대사관 쪽에서 일정 변경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충청 지역의 모 대학을 방문하고 싶으니 일정을 3시 30분 이전에 마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초 11시 30분에 도착하기로 했던 방문단은 1시가 넘어서야 도착했고, 그때부터 일정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벤처기업 한 곳을 들르고 난 다음 두 번째 연구소를 방문하게 된오후 3시경, 일행은 더위와 시장함으로 짜증스런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신기술을 활용해 교육 현장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과 장비 앞에서 외국의 나이 지긋한 의원들과 수행원들은 주의가 산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벤처 기업에서는 열심히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장비들을 시연해 보이고 있는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브리핑과 체험이 끝난 오후 3시 30분 무렵, 의례적인 인사로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보았더니 지치고 배가 고프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점심도 못했다는데 서울에서 대전까지 세 시간 가까운 자동차 여행에 연구소들을 들러 브리핑을 듣자니 설명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겠지요. 그래서, 식사를 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배고픈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해산물 식당이 있냐면서 식당으로 가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을 한 고기를 먹어야 하는 종교풍습 때문에 해외에서는 음식을 많이 가리는 사람들입니다. 할랄 식품이 아니면 고기 요리는 피하는 사람들이라 생선 요리를 택했던 것이겠지요. 그것이 좋겠다는 판단 아래 기다리고 있던 대학측 인사에게 식당으로 가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다 준비해 두었는데 여기서 식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손님들이 시장하다는 의사를 표했고, 그러면 식사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는 그 대학이 있는 도시는 대전에서 두 시간, 점심을 굶은 외국 의원들이 배가 고프든 말든 그대로 가겠다는 것이었지요. 교수는 저희 일행이 탄 차와 의원들이 탄 차량을 왔다 갔다 하더니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다시 저희에게 돌아와서 말하는 것이었어요.


“의원들이 이동을 하기로 동의를 했으니 가야겠다”고 말이지요. 이 모든 상황이 10분가량 벌어진 곳은 두 번째 방문한 벤처 기업 건물 앞이었습니다. 창피했습니다. 결국 그 의원단은 점심을 굶은 채로 두 시간 가량을 더 이동했겠지요. 마침 저희 회사의 담당국장이 간단한 샌드위치와 약과, 음료수를 도시락 형태로 만들어 일행에게 전달했더니 의원단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시락을 열더라고 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정신 나간 짓’이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고픈 외국 손님을 두 시간 더 굶겨가지고 산해진미를 대접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요기를 하게 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그 같은 결정을 하는 그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정신을 가르칠까요? 돌아오는 길에 인터넷으로 그 학교의 웹사이트를 검색했더니 ‘철저한 서비스’ 정신을 가르친다는 블로그 글이 나왔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이들은 흔히 ‘고객중심’을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입으로는 ‘고객중심’을 부르짖으면서도 실제로는 ‘업자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저녁 준비를 해두었으니 배가 고파도 점심은 먹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반면교사를 만나 ‘시청자 중심’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6월입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어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러분들에게 다가가는 6월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6월 12일에는 명쾌한 소비 트렌드 분석으로 지역 기업인들의 마음을 샀던 김난도 교수의 ‘대전MBC 미래특강’이 특별 편성으로 방송됩니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이길 생각을 하지만 매일매일의 전투가 모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6월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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