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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오늘의 방송은 내일의 역사

 

오늘의 방송은 내일의 역사

“오늘의 신문은 내일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방송이 보편화되지 않은 신문 시대에 만들어진 말이지만, 언론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이 말처럼 함축적인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현장에서 직접 방송을 제작하지는 않지만 “오늘의 방송이 내일의 역사”라는 말을 떠올리며 정신을 번쩍 차린 시절도 있었습니다. 몇 십 년, 어쩌면 몇 백 년이 지나 누군가 오늘 내가 만든 방송 자료를 찾아본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실제 얼마 전 그런 일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강연을 위해 몇 년 전의 방송 자료가 필요해 옛날에 보도한 방송을 ‘다시보기’로 찾아보았습니다. 지난 날 자신이 했던 방송을 다시 보는 일은 쑥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일이 드물지만 사건 발생 날짜와 상황을 인용할 필요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송 스타일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리포팅도 지나치게 빨랐고 내용도 현학적이기만 했습니다. 방송 시청자들은 짧고 단순한 문장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웬 문장은 그리도 긴 만연체로 되어 있는지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리포팅을 하는 내가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기 힘든데, 시청자들이 들으면 어땠을지 짐작이 갔습니다.


“오늘의 신문(방송)은 내일의 역사”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가 하는 일이 엄중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방송의 위력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신문의 경우 스스로 찾아서 읽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방송 (broadcast)은 다중을 대상으로 뿌려지기 때문에 막강한 파급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된 지금은 상황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한때 방송의 톱뉴스가 세상을 지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매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선거철인 요즘은 더욱 그렇습니다. 의원 후보들은 단 한 장면이라도 더 나오기 위해서 이색적인 행사를 만들어 텔레비전 카메라에 비치려고 합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가 선거판에서처럼 실감나는 곳도 드물겠지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범죄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가급적 텔레비전 카메라를 피하려고 하겠지요. 때문에 최근 아동학대를 비롯해 범죄에 가담한 혐의자들은 큰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모자를 써서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부 비리 혐의자들은 텔레비전 카메라를 피해 도망을 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화면 인터뷰를 피하기 위해 줄달음치는 비리 혐의자들을 온힘을 다해 뒤쫓아 가던 경찰기자 시절도 있었습니다. 기자 신분을 숨기고 현장에 잠입해 화면을 촬영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동원되는 수단이 흔히 알려진 ‘몰래카메라’입니다. ‘몰카’에 잡힌 어두컴컴한 화면에는 우리 삶의 어두운 단면이 담겨 있는 때가 많지요. ‘보도되지 않으면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비리 혐의자도 처벌받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체 감사를 거쳐 처벌을 받거나 고소 고발을 통해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도의 대상이 되어 세상에 알려지면 꼼짝없이 단죄를 받고 처벌 대상이 되며 여론의 뭇매까지 맞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정확한 사실의 기록’이라는 언론의 사명이 등장합니다. 잘못된 보도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정확한 사실을 취재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직접 목격을 하지 않은 대다수 시청자들의 경우에는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화면과 기사만을 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을 하게 되니까요. 화면도 중요합니다. 화면만큼만 진실이라는 말도 있는데, 화면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뉴스 앵커를 비롯한 진행자들이 상당한 시간을 들여 분장을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커다란 코끼리를 어느 각도에서 찍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리 보이기도 하지만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최근 어느 행사에 참석해서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막상 화면에서는 다른 발표자의 모습만 클로즈업 되고 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으로 방송이 되어 적지 않게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 화면은 사람을 지적으로 보이게도 하고 바보처럼 보이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카메라 기자가 앙숙 관계에 있는 취재 기자의 모습을 촬영할 때 카메라를 아래에서 받쳐서 들창코로 나오게 찍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총선을 앞둔 지금 너나할 것 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새삼 언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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