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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알파고를 보면서

 

알파고를 보면서

지난 일요일(3월 13일)이었지요.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세돌 9단의 활짝 웃는 모습을 말이지요.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 예정된 다섯 번의 대국 가운데 네 번째 대국이었습니다. 앞서 이세돌 9단은 3패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승리한 사람은 이세돌 9단이었지만 그 기쁨을 제가 온전히 느꼈다는 것인데, 그것은 저로서는 이례적이고 대단한 현상이었습니다. 바둑을 두지도 않고 바둑 대국을 즐겨보지도 않는데다 흥미도 가지지 않는 ‘초문외한’에게 이상 현상은 이미 그 전에 나타났습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대국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공포감이 엄습했습니다. 인간과 기계와의 대결에서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 만약 진다면 그 파장은 얼마나 클 것인가, 인공지능이 이런 식으로 개선에 개선을 거듭해 나간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얼마 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송된 ‘인공지능이 온다’라는 아이템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결합할 때 어떤 일이 나타날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프로 골퍼와의 대결에서 단번에 홀인원을 하는가 하면, 식당에서는 최고 주방장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오이를 썰고, 우동을 말아내는가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읽고 사람과 대화를 척척 해내기도 합니다.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여생을 보내야 하는 하반신 불수의 환자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 성큼성큼 걷게 하는 것이 로봇이라면, 그 로봇에 지능까지 보태질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줄기세포와 클론을 만나면 또 어떻게 될까요? 줄기세포를 만들어 병든 신체 장기를 교체하고, ‘클론(clone)’을 통해 나와 꼭 같은 인간을 찍어내는 저편에서 인간의 피부와 흡사한 ‘껍데기’를 가진 로봇에 인공지능을 심는다면, 인간 세계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되겠지요. 현재 인종은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등으로 분류되지만 미래의 세계는 그에 덧붙여 인간 배태 종, 클론 종, 인공지능로봇 종 등으로 분류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를 추구 했다면, 클론 종이나 인공지능로봇 종이 인간 배태 종에 도전장을 내고 그들을 지배하려 들지는 않을까요?

 

너무 공상과학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냐고, 걱정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실제 데미스 허사비스 알파고 개발자도 카이스트에서의 강연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낙관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몇 십 년 전 SF 영화에서 예견한 것들이 이루어진 것도 많으니까 말이지요. 원자력만 하더라도 인간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무한정 공급해줄 수 있는 기술이지만 그것이 핵무기로 바뀌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인간으로 귀결이 되겠지요. 공생의 길을 갈 것인가 공멸의 길을 갈 것인가, 선택은 인류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대한민국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공지능이 화두가 되었고, 바둑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도 침착하게 바둑을 두는 이세돌 9단의 모습은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져도 큰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고 이겨도 지나친 흥분은 없었습니다. 바둑은 이성의 게임이라고 하던가요?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라면 저렇게 두지는 않아요”, 이런 말도 나왔지요. 인공지능을 인간의 상대로 본다는 뜻입니다.


바둑을 보아하니 일상생활에 이렇게 바둑 용어가 많이 쓰이는 줄도 몰랐습니다. 승부수, 국면, 판세, 꼼수, 묘수, 정석, 고수, 하수, 포석, 약점, 응수 등의 용어를 근본도 모르고 썼는데 알고 보니 다 바둑 용어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전 사람들은 무척 바둑을 많이 두었나 봅니다. 요즘 사람들도 인터넷과 SNS를 쓰면서 ‘3포 세대’, ‘뇌섹남’, ‘솔까말’, ‘듣보잡’ 등 유행어를 쓰는데, 인터넷처럼 속도가 빠른 매체가 속도가 빠른 세대와 만나다보니 이런 언어들은 금세 사라져버립니다. 바둑의 용어와 최근의 유행어를 비교해보면 바둑 용어는 상당히 점잖은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보수적인가요?).


뭐니 뭐니 해도 바둑 용어 가운데 가장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든 용어는 아마도 ‘할 수가 있다’가 아닐까요. ‘갈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 등 우리가 수없이 쓰는 이 말이 바둑에서 나온 걸 보면 바둑의 수는 무한정인가 봅니다. 오죽하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 바둑 용어를 썼을까요. 그의 선거운동 구호는 “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였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 가운데 좋은 것만 우리의 아들딸들이 누릴 수 있도록 인간의 ‘성선설’에 기대고 싶은 오늘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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