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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분장실이요? 외모보다 자신감을 업그레이드하는 곳이죠”

 

 

 

브러쉬와 시침핀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
갤러리에서나 들릴법한 주의 사항이 울린다. 고가의 예술품이라도 있는 것일까? 불난 호떡집처럼 정신없는 이곳에서 이들이 ‘작품’이라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메이크업과 헤어, 의상 착용을 마친 출연자들이다. 카메라 앞에 서기 전 화룡점정을 찍는 곳, 바로 대전 MBC 분장실이다. “새벽 5시 30분 김도연 기상캐스터 분장으로 하루가 시작돼요. 새벽 일정은 바쁘고 <생방송 아침이 좋다>를 준비하는 아침 시간엔 정신없죠. 분장팀과 스타일리스트의 호흡이 정말 중요해요. 우리 팀은 합이 잘 맞아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분장팀 스태프들과 라보라 스타일리스트에게 고맙죠.”

 

 

 


분주한 오전 시간을 보낸 장혜경 분장실장이 스태프들의 자랑을 슬쩍 꺼낸다. 대전MBC 분장팀은 총 다섯 명. 분장실 한쪽에서 다음 방송을 준비 중인 유지은 아나운서가 ‘최고’라며 자랑을 보탠다. 누군가를 곱게 꾸며 좋은 프로그램에 일조한다는 것이 뿌듯해 웃으며 일한다는 이들이지만, 웃음 뒤에는 남에게 말 못할 애환도 많다. “라보라 씨는 굽 높은 신발은 꿈도 못 꿀 정도로 활동량이 많아요. 분장실 안에서 하는 업무 외에 의류 협찬 때문에 하루에도 업체를 수없이 방문하고 다시 반환하러 대전 곳곳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복잡한 백화점 주차장도 이 친구한테 물으면 한적한 곳을 알려 줄 정도예요.(웃음)”

 

 


한번은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기력이 빠져 졸도한 적도 있었다며 안쓰러운 얼굴로 장 실장은 말했다. 당시 라보라 씨는 임신 5개월 차였다.


MAKE UP, 자신감도 UP
“힘들죠. 그래도 그렇게 구해온 의상이 방송에 정말 예쁘게 나오고, 입었던 출연자가 마음에 쏙 들어 하며 ‘내 것’ 하고 싶다고 말할 때 피로감이 싹 사라져요. 고생만큼 보람도 있어서 제 일이 좋아요.”
‘소년처럼’ 해맑게 웃는 라보라 스타일리스트. 백화점을 다니며 진열된 의상을 보며 정보도 얻고 업무도 함께 볼 수 있어 좋다고 덧붙인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묻자, 어린 시절 TV로 보던 ‘허참 아저씨’ 의상을 처음 스타일링 할 때를 꼽는다.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흥분으로 남아있단다. “아 그리고 또 있어요. 우리 아나운서가 입었던 옷을 얼마 뒤에 배현진 아나운서가 입고 나왔을 때요.(웃음) 배 아나운서 말고도 종종 그런 일이 있죠. 그럴 땐, ‘흠, 우리가 앞섰군!’ 이러면서 분장실 스태프들하고 통쾌하게 웃어요.”


“한빛대상 시상식 같은 때엔 방송인이 아닌 시민들이 주인공이잖아요. 열심히 살아온 일을 박수 받는 그 날, 한 분 한 분 예쁘고 멋있게 분장할 때 기분 좋죠. 카메라가 낯선 분들이 분장 덕분에 자신감도 ‘업’ 됐다고 말할 때 저도 보람을 느껴요.”


함께 웃던 장혜경 실장은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경우를 꼽았다. 까다로운 출연자는 없느냐고 묻자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노코멘트. 가명 기재를 약속하자 입을 연다.

 

 


“김경순(남. 가명) 아나운서요. 꼼꼼한 성격만큼 까다로웠어요. 소문난 패셔니스타라 수준도 남다르고. 아무튼 처음엔 달달 볶였어요. 그런데 협찬이 정말 어려웠던 때가 있었어요. 백화점도 개인이 운영하는 매장이 대부분이라 회사에서 보낸 공문으로도 협찬을 못 받았어요. 방송은 매일 나가야 하는데 눈앞이 깜깜했죠. 아무리 뛰어다녀도 안 됐어요. 그때 ‘김경순’ 아나운서한테 나 못 하겠어요 선배, 엉엉 울면서 말했어요. 그러니까 ‘김경순’ 아나운서가 각자 자기 의상을 준비해서 방송하자고 아나운서들에게 전화했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을 각자 준비한 옷으로 방송한 덕분에 무사히 협찬사도 확보했어요. 그땐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생글거리던 라보라 씨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손등 위로 눈물을 텀벙 텀벙 떨어뜨린다. 반복되는 거절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던 시기였다. 그래도 김경섭 아나운서(이쯤에서 본명을 밝히자)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단다. 라보라 씨는 충혈된 눈가를 소매로 쓱 훔치곤 반환할 의상을 챙겨 총총히 분장실을 나서고, 장 실장은 태풍이 휘몰아친 분장실을 바쁘게 정리하며 다음을 준비한다.


타인의 가장 찬란한 한순간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하는 그들의, 그 땀방울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