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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속도감 있게, 겸손하되 당당하게!”

 

 “속도감 있게, 겸손하되 당당하게!”

 

“최근 당신은 몰입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다면 행복의 조건 하나는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평일 저녁 라디오를 통해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생방송 오늘>의 진행자, 손지혜 씨를 만났다.

 

톡톡 튀는 DJ에서 시사자키로의 변신
손지혜 MC는 지난해 11월부터 표준FM(92.5) <생방송 오늘> 프로그램의 시사자키로 퇴근길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정오의 희망곡>, <FM 모닝쇼>를 들으며 흥얼거리던 추억이 있는 청취자라면 익숙한 목소리에 반가움을 느꼈을 터. 그녀가 톡톡 튀는 DJ에서 시사자키로 새롭게 우리 곁에 돌아왔다.


“미국에 있을 때 뉴스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시사프로그램 프로듀서로도 일을 했기 때문에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어색함은 없어요. 단지 전에는 음악 듣는 시간이 많았다면 요즘은 매일 뉴스를 살펴보고 뉴스 노트를 만들어 정리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죠.”

 

 


실제로 그녀의 뉴스 노트를 보니 그날의 지역뉴스 헤드라인과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방송 전에는 출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다. 20년 넘게 라디오 진행자로 신뢰 받고 사랑받아온 비결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생방송이기 때문에 진행자뿐만 아니라 출연자들도 긴장하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긴장도 풀고 친밀감도 높이기 위해 미리 통화를 하는 거죠. 물론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만족스러운 방송을 할 수 있어요.”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뉴스가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정작 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는 요즘이다. 손지혜 씨는 청취자의 다양한 니즈에 주파수를 맞추고 지역의 현안과 이슈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사람들이 아고라(Agora)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던 것처럼 <생방송 오늘>이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Enjoy your life to the fullest!”
이렇게 방송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손지혜라는 사람의 삶이 궁금해졌다. DJ를 그만둔 후 10년만의 ‘컴백’. 10년이라는 공백기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년 동안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는 손지혜 씨. 그래서 미련 없이 방송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뜻밖에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됐단다.


“대영박물관에 가서 언어 서비스를 신청하려니까 다른 나라는 다 있는데 한국어 안내 서비스만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박물관 관장님도 만나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면서 방법을 고민했죠.”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왜 그 일에 집중하게 됐을까?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이 집념으로 바뀌면서 그녀는 두 달 가까이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고 수소문하며 방법을 찾아 나섰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지만 박물관에서 ‘런던 Antenna Audio’ 프로그램 제작사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기획, 제작하는 일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녀의 지치지 않는 열정 덕분에 ‘온 우주가 도운’ 것일까?


낯선 객지 생활 속에서 양부모님을 얻은 것도 큰 행운이었다. “Enjoy your life to the fullest!” 너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라던 양부모님의 말씀은 이제 그녀의 좌우명이 됐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방송뿐만 아니라 키즈 스피치 교육과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한국어 교육 서비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후 6시, 라디오 부스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경쾌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방송 시작 전. 그녀가 원고에 낙서처럼 메모를 남긴다. ‘속도감 있게, 겸손하되 당당하게!’ <생방송 오늘>에 주파수를 맞출 시간이다.

 

김민영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