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웅변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 학교의 스타로 부상. 중·고등학교 전설의 오락부장을 거쳐 1987년, 대전MBC 라디오 오픈스튜디오 ‘대학가 MC 열전’을 통해 방송에 입문했다. 현장을 누비는 라디오 리포터를 거쳐 <여성시대>, <특급작전>을 진행했으며 현재 <즐거운 오후 2시>를 진행하고 있다. 연극배우이자 기획자이기도 하며 ‘라디오 영화배우’라는 별명에 걸맞게 4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출연시간은 다 합쳐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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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작가 ‘이상’은 “신문도 오지 않고 자동차한 대 지나지 않는 벽촌에서, 단조 무미한 초록벌판과 어제 보던 댑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를 바라보며 극한의 권태에 오들오들 떨었노라” 고백했다. 삶에서 권태를 느끼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가? 어쩌면 그 반대가 아닐까?
삶에 숨어든 오후 2시의 권태
일찍이 그는 이상의 권태를 낱낱이 이해했다. 자그마치 26년을 매일같이 해온 일... 마이크 앞에 앉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未知)의 청취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매번 가슴 설레고 보기만 했다면 거짓이리라. ‘설렘과 보람이 다반사라면 그것들 역시 싱겁고 지루한 권태가 되지 않았겠냐’며 그는 반문한다. 스물다섯의 나이로 시작한 라디오 리포터를 거쳐 <여성시대>, <특급작전>, <즐거운 오후 2시>의 MC로 살아온 26년의 세월. 그 무수한 시간 어딘가에서 그는 분명 권태를 느꼈다. 하지만 권태롭지않은 체하며 허술한 나태를 즐기거나 그저 타성으로 마이크 앞에 앉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권태를 느끼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가? 아니다. 어쩌면 정반대다. 그는 누구보다 재빨리 일상에 숨어든 권태를 알아차렸고, 가만두지 않았으며, 열심히 내쳤다. 그러니까 권태라는 놈 입장에서 보면 그는 선수다. 그것도 늘 ‘이기는 습관이 있는’ 선수다.
위대한 ‘일관’의 힘
필자는 요즘 권태라는 놈에게 13전 12패쯤 당해 잔뜩 무기력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이기는 습관을 물었다. “등산은 ‘산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하더라. 올라가려고 애를 쓰다보면 힘이 들기 마련이고, 앞서가는 사람이 애꿎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해 걷다보면 오르막이건 내리막이건 신경 쓰지 않게 되고, 내게 맞는 속도를 알게 된다. 발자국이 전부 같은 것 같지만 다 다르다. 거기서 재미가 나오고 힘이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내가 마치 해탈한 스님 같다. 이 부분만 들으면 스님이랑 인터뷰 한줄 알겠다.(웃음)”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한참을 ‘너무 돌부처 같나?’ ‘법륜스님인 줄 알겠네~’ 하며 농담과 웃음을 이어가던 그가 다음 말을 꺼냈다. “나는 일상에서 ‘환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없는 유머라도 한 번 던져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 잔잔한 생각을 뒤집는 것. 싱거운 관계에 양념을 치는 것. 이를테면 유머나 호기심,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 등에 무덤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전부청취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결국, 대화와 공감으로 통하기 마련이니까.”
그가 라디오와 함께 해온 26년을(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는 늘 그래왔다. 위대한 일관은 권태를 이긴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1993년 <여성시대>의 진행자로 낙점된 김주홍. 당시 나이 스물여덟. 앳된 총각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십대의 젊고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한!!’ 총각이 여성시대의 진행자가 된 일은 유례없는일이라 방송국 안팎이 들썩였다고 한다. 우와~~~~!! (필자의 반응이 의외로 너무 뜨겁다 싶었던지 바로 말을 바꾼다) 아마도 그랬었었었었었-던 것 같다고. 5남매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 화초처럼 귀하게 자랐던 그는 스무 살이 되도록 부엌근처에도 안 가봤다. 그런 그가 <여성시대>의진행자가 된 것이다. 건강상담 코너에서 월경, 임신, 출산이라는단어만 나와도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뭣 모르던 총각은 서서히 뭘 알게 됐고, 아름다운 한 여성의 남편이 됐으며 금세 두 아이의 아빠도 됐다. <여성시대>와 함께 한 10년의 시간들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흔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 후, 2003년부터 진행하게 된 <즐거운 오후 2시>. 올해로 12년째다. 오후 2시의 권태로움을 가르는 김주홍, 이수진 두 MC의 목소리. 이수진의 목소리가 터지는 꽃봉오리 같다면 그의 목소리는 나이테가 선명한 나무 같다. 대지를 향해 뻗었던 첫 뿌리의 활력을 올올이 기억하는 나무와 닮았다. 나무는 오늘도, 수액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어제와 같은 하루를 산다. 나무의 권태는 지나는 바람이 데려갔으리라.
김가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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