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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설치와 분해의 미학, 무대 위 세트를 소개합니다.

“철거가 아닙니다, ‘분해’하는 거죠. 몇 번이고 다시 설치해야 하니 분해할 때 더 조심해서 작업해요.”


3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육중한 세트 기둥을 번쩍 들어 올리며 김봉선 무대감독은 대꾸한다. 혼자 들기 벅차 보였건만 ‘철거’와 ‘분해’의 차이를 친절하게 짚어주며 빈 몸처럼 가뿐하게 무대 위를 활보한다.

 


제1회 한빛대상 무대, 가장 기억에 남아
낭비라곤 찾을 수 없는 노련하고 숙련된 움직임. <허참의 토크&조이> 녹화가 끝난 무대는 전기 드릴 소리 몇 번으로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허참 아저씨가 안방처럼 편하게 토크쇼를 진행했던 무대가 이리도 쉽게 분해되다니, 혹시 부실공사는 아닐까?


“하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동안 세트 문제로 사고가 난 적은 없었어요. 설치할 땐 튼튼하게, 분해할 땐 조심스럽게. 아, 예전에 소품을 빼 먹었던 적은 있었어요. 저 혼자만 알고 지나가는 방송 사고였죠.(웃음)”


혼자 뜨끔하고 지나갔던 사고라며 김 감독이 검지를 입에 갖다 댄다. 김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무대 설치와 분해엔 약 2∼3시간이 소요된다. 김 감독은 2003년 입사 후 큰 사고나 부상 없이 지금껏 세트 제작과 설치 분해 작업을 맡고 있다.

 

<건강 플러스>, <시사 플러스>, <토크&조이> 등, 대전MBC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세트 대부분이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무대를 꼽아달라고 하니 <제1회 한빛대상>이라 주저 없이 말한다.

 

“상 자체에 의미가 있잖아요. 자랑스러운 대전 시민에게 박수를 쳐 주는 자리니까요. 정말 정성 들여 무대 구석구석을 꾸몄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화면으로 봤을 때도 멋졌고요. 엄지 척, 들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신조요? (몸으로) 하면 된다!”
“세트 일은 요령이 8할이에요. 3미터짜리 기둥도 드는 방법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거든요. 백날 가르쳐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머리 좋은 친구는 금세 적응하는 게 세트 일이죠.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다음날 허리가 아프다며 하루 일하고 관두는 일이 다반사에요. 허허 몸으로 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다구.”


평소 산악자전거를 즐긴다는 김 감독은 누구보다 몸 쓰는 일엔 자신 있다. 방송국에선 물론 퇴근 후 집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인테리어와 설비, 보수, 심지어 빨래도 제 몫이에요. 아, 물론 100% 자발적인 것이란 걸 강조하고 싶군요. 집안일은 기본이고 지인들 이사에도 불려 다녀요. 절 이사 대행업체 쯤으로 아는지(무임으로 엄청 부려 먹어요 하하). 돕고 살면 좋죠. 뭐.”

 

                          


조명도 없는 세트 뒤에서 일하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김 감독. 말수는 적지만 그의 얼굴엔 사람 좋은 미소가 늘 배어있다. 작은 실수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늘 긴장해야 하는 세트 작업이지만 이 일이 재밌단다. 원체 조립하고 설계하며 뭔가를 만드는 작업을 좋아했던 김 감독인지라 무대감독은 자신의 성향과 딱! 맞는 직업이란 것.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전MBC 스튜디오가 일하기 편리한 장소라는 점도 일을 즐겁게 만들어요. 공개홀과 세트실 이동 경로가 우리만큼 짧고 최적화된 곳이 없거든요. 다른 방송사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감탄해요. 세트실과 공개홀을 오가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방송국도 있답니다.”


‘세트 꾼’이라면 모두 다 부러워할 일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니 어찌 아니 기쁠까. 그래서일까, 김 감독이 세트를 분해하며 나르는 저 커다란 벽조차도 가벼워 보인다. 오늘도 무대 위의 세상을 설계하고 해체하는 김 감독의 휘파람 소리가 그의 전동 드릴 소리처럼 경쾌하기만 하다

 

안시언 | 작가